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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니들이 알아? 연애를, 술을, 운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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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연애 강사’이명길씨, ‘주도 강사’정헌배 교수, ‘운 테크 강사’이정일씨.[사진=권혁재 전문기자]

한 가지만 잘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지만, 한 가지만 잘해서는 뭔가 불안한 세상입니다. 대학생들에게 외국어·컴퓨터는 이제 기본이지요. 요즘엔 현장실습 중에 돋보이기 위해 각종 ‘개인기’ 학원에 다니기도 한다죠. 직장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재테크에서 ‘텔미 댄스’까지, 배워야 할 것이 끊임없이 늘어만 갑니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니 당연히 ‘별걸 다 가르치는 사람들’도 늘어납니다. 어떤 이는 100번이 넘는 연애경험을 자산으로 옆구리가 허전한 싱글 남녀들에게 연애기술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운(運) 테크’ 강사도 있습니다. 대학 강의실은 또 어떻고요. 학생들의 다양해진 요구에 맞춰 이색 강의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필요 없어 보이지만 꼭 필요한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들, Week&이 그들을 만나봤습니다.

글=이영희·홍주연·안충기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연애 필살기’ 가르치는 이명길씨
"소개팅 뒤 온 문자는 15분 지나 답하라”

 이제는 다들 안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는 것 정도는. 그리하여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순정’ 외에도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런데 어떻게? 남들은 ‘기술’ 같은 것 안 쓰고도 잘만 하던데 나만 왜 이 모양? 푸념하는 당신에게 연애강사 이명길(28)씨는 딱 부러지게 말한다. “공부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듯, 연애도 마찬가지죠. 토익 공부를 안 하고 토익 점수가 오르길 바라면 안 되죠. 연애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당당하게 공부합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유일한 남자 커플매니저라는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만 라디오·케이블 TV의 연애상담 프로 출연, 기업체 및 대학 등에서의 연애강의로 더 바쁘다. 특히 그의 강의는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필살기’를 전수해 주는 족집게 강의로 소문났다. “진심이 중요하다든가 밀고 당기기가 필수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지루하죠. 중요한 건 ‘어떻게’ 입니다. 저는 ‘소개팅 뒤 처음 온 문자에는 15분 후 답하라’든지, ‘예쁘다’보다는 ‘머리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칭찬하라든지, 아주 구체적인 상황별 실전 기술을 알려드립니다.”

 듣는 사람들의 성별·연령대에 따라 강의 내용도, 반응도 확연히 달라진다. “‘리액션’이 가장 활발한 것은 20~30대 여성들이에요. 질문도 많이 하고, 공감도 잘하죠. 군인들에게 하는 강의도 재미있죠. ‘원거리 연애법’ ‘전화로 사랑 고백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면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무척 집중해서 들어요.” 강의하기 제일 힘든 것은 30대 중반 이상의 ‘무덤덤한 노총각들’.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다 안다는 듯’ 반응이 없는 이들에게는 ‘A의 경우에는 B하라’ 식의 스트레이트 강의가 최고다. 무표정하게 받아 적던 ‘형님들’이 다음 강의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선생님 시킨 대로 했더니 효과가 있더라”며 음료수를 건넬 때 연애강사로서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고.

 직업을 선택한 계기가 독특하다. 제대 뒤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답이 ‘연애’였다. “남녀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조언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랑’을 무기로 삼기로 했죠.” 심리학·철학·커뮤니케이션 관련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나름대로의 ‘이론’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연애상담을 시작했다. 대학 4학년 때는 『여우들이 궁금해 하는 늑대들의 진실』이라는 책을 냈고 이런 경력들을 인정받아 듀오에 입사할 수 있었다. ‘경험한 것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그가 공식적으로 밝힌 자신의 연애경험은 총 130번. “진한 사랑도 있고, 장난 같은 만남도 있고, 책 쓰려고 시험 삼아 만난 사람도 있어요. 지금은 2년째 한 여자와 만나고 있으니 선수 생활에서는 ‘사실상 은퇴’ 상태입니다. 하하.”

이영희 기자

‘명주와 주도’ 가르치는 정헌배 교수
"룸살롱 마담들도 내 학생”

 학생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술병을 꺼낸다. 아예 술잔까지 ‘장비 일체’를 내놓는 여학생도 있다. 스승이 들어오는데도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네는 한산소곡주 가져왔네, 어 거기는 이강주인가, 화요 공장에 가봤단 말이지, 흠 안동소주라…. 정헌배(52·경영학) 지도교수는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한술 더 뜬다.

 지난주 목요일 오전 9시 서울 흑석동 중앙대 서라벌홀 7층의 한 강의실, 아침부터 사제지간에 ‘술판’이다. 오해받기 마침맞은 이 시간은 그러나 엄연한 ‘명주와 주도’ 강의자리다.

 “전통 술문화가 무너졌어요. 요즘은 폭탄주고 뭐고 마구 만들어 마시잖아요. 약까지 먹어가며 마셔요. 또 우리는 주정 부리는 사람에게 아주 관대해요. 사람은 좋은데 술이 원수라며 두둔하지요. 그러니 신입생 환영회에서 학생들이 술 먹고 죽고 그러잖아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강좌 첫해인 1999년에 700여 명의 수강생이 몰려 곤욕을 치렀다. 서울과 안성캠퍼스에서 동시화상수업을 해야 했다. 인원을 제한하는 지금도 잠깐이면 수강 정원이 찬다.

 경기도 동장 500여 명이 그의 술 이야기를 들었다. 룸살롱 마담 300여 명 앞에 서보기도 했다. 고위공무원, 은행장, 국내 기업 CEO, 외국 기업 간부…. 강의를 듣는 ‘나이 든 학생’들은 졸 틈이 없다. 술자리에 가서 써먹기 딱 좋은 내용들이 그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나이트클럽 웨이터들과도 친하니 ‘업계’ 사정에 훤하다.

 어느 기업체에서 강의 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였다. 참석자들이 눈치만 슬슬 볼 뿐 술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 잔을 돌리지도, 오가며 잔을 권하지도 않았다. 강의 중에 그가 한 말 때문이었다. “술 마실 때 십불출(十不出)이 있어요. 넷째가 ‘술 먹다가 딴 좌석에 가는 자’예요. 술잔 들고 자리 옮겨가며 마시는 사람은 머슴 아니면 기생뿐이죠.” 싸아한 분위기에 머쓱해진 교육담당자가 슬며시 말하더란다. “다음엔 넷째 항목 좀 빼고 강의하면 안 될까요”

 인삼주를 세계 명주로 만들어 보자고, 우리도 100년 묵은 술 한번 만들어 보자고 30여 년을 뛰어다녔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3년 전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경기도 안성에 인삼밭을 만들고 제조시설을 갖췄다. 그의 연구소 서가엔 세계 각국의 명주들이 빼곡하다. 술은 그의 또 다른 책이다.

 술 좋아하는 이들에게 주는 그의 당부 세 가지. “첫째, 지주지기(知酒知己). 술을 알고 나를 알면 실수할 일이 없어요. 둘째, 인탄주(人呑酒). 사람이 술을 마시지 술이 사람을 마셔서야 되겠어요. 셋째, 풍류(風流). 술은 즐겨야지 목적이 되면 곤란하죠”

 그의 술 실력은 딱 두 잔이다. 두 번째 잔은 보약이다. ‘후래자 삼배’는 그래서 벌주란다.

안충기 기자

‘운 활용법’가르치는 이정일대표
"운명은 만드는 것, 우연은 없어요”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여성미 흐르는 옷차림, 우윳빛 피부…. 이정일(28) 운테크연구소 대표의 첫인상은 의외로 평범했다. 또래 20대처럼 생기 넘치고 발랄했다. 어릴 적부터 점성술을 공부했고 세 권의 책을 썼으며 ‘운(運) 테크’ 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이력이 쉬 읽히지 않았다. 그러나 명함을 교환하는 동안 사람을 뚫어져라 보는 눈빛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이씨는 “관상을 읽는 것이 습관이 돼 나도 모르게 그런 눈빛이 나오는 것 같다”며 수줍어했다.

 그는 1년에 150~200개 회사·병원 등에서 강의하고 업계 최고 수준의 강의료를 받는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재학이라는 이력과 단아한 미모에 물 흐르듯 유창한 말솜씨는 성공한 강사가 되는 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강점은 독특한 강의 내용에 있다. 아홉 살 때부터 할머니에게서 점성술을 배웠다. 별자리·사주·관상·풍수 등은 혼자 공부했다. 강의 주제도 ‘자신의 운을 잘 활용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자신의 강의가 ‘점(占)’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장점을 끌어내라고 강의해요. 결국 자기 계발에 대한 강의죠.” 별자리 점성학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태양·달·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등 7개의 행성이 상징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중 어느 행성을 많이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특성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성이 강한 사람들은 지적이며 호기심이 많고, 화성이 강한 사람들은 활동적이고 추진력이 있다.

 그는 강의에서 자신이 어떤 행성의 성격이 강한지 파악하라고 권한다. “모든 사람이 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에 따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아요.” 이 대표는 최근 한 은행 지점장에게 “상사를 모시는 것보다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더 잘 맞는다”고 조언했다. 그 지점장은 승진을 포기하고 지점에 남아 고객을 늘렸고, 인맥을 기반으로 개인 사업도 성공했다.

 이 대표는 강의 전 보통 3~4개의 주제를 준비한다. 그날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읽고 다수가 궁금해하는 것을 선택한다. 영업 직원들에게는 ‘고객 마음을 사로잡는 법’,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좋은 직원을 뽑는 법’ 등을 강의한다. “대치동 주부들을 상대하는 보험 설계사들에게 ‘모성(母性)이 강한 사람에게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강의했죠. 몇 달 후에 판매가 확 올랐다고 연락이 왔어요.” 부도 위기의 회사에서 강의하는 경우도 있다. “속사정은 말하지 않지만 다들 힘들어하는 것이 보이죠. 힘든 시기가 언제쯤 지나갈 거라고 말하면 눈물을 흘리는 직원도 있습니다.”

 강의마다 이 대표의 결론은 같다. ‘우연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가 만드는 거예요. 내 안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면 운을 좋게 만들 수 있어요. 내가 바뀌어야 행운도 따라옵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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