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용서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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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용서는 「용기있는 자만의 것」이라고 한다.정치적 용서는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영국(英國)보수당의 정치 거목(巨木) 아서 밸푸어총리는 『용서라곤 해 본 적이 없다.자주 잊어버렸을따름』이라고 회고했다.
용서와 망각간의 경계는 모호하다.『제2의 원죄』를 쓴 헝가리태생의 심리학자 토마스 샤스는 『어리석은 자는 용서도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는다.순진한 사람은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어버린다.현명한 사람은 용서는 하되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고 했다.
보복이나 「한(恨)풀이」보다 용서가 상처의 치유는 물론 앞으로의 발전에 더 효율적이란 인식이 심리학자들간에 고개를 들고 있다. 「심리요법으로서의 용서」「용서와 망각에 의한 사회적 진보」등 용서를 인간및 사회발전에 불가결한 요소로 파악하는 「용서의 심리학」이다.
어제의 원수를 욕보이고 저주하는 한풀이는 일시적인 후련함을 안길뿐 보복및 응징의 내면적 독소가 자신속에 파고들어 그 주변을 두고두고 오염시킨다.「한맺힘으로 흐트러진 내면적 균형을 되찾고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용서뿐」이라는 가설이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정치적 범주 내지 이념으로 확대되는 경향이다.노예들의 한이 미국(美國)에 남북전쟁을 불러왔다.
「악의를 거두고 모든 사람에게 자애를」호소한 링컨의「용서의 정치」는 그의 암살로 무산됐다.
1차대전후 연합국,특히 프랑스가 패전 독일(獨逸)에 관용을 베풀었던들 히틀러의 득세(得勢)와 2차대전은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따른다.
혁명은 피를 부르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그러나 베를린장벽과「악의 제국」소련은 평화적으로 무너졌다.80년대 후반이후 많은 권위주의체제들이 평화롭게 민주체제로 이행되고 있다.「화해와 용서와 망각을 통한 진보와 혁명」「용서의 시대」로 불린다.
발칸반도와 舊소련의 일각에선 인종적 원한이 지금도 유혈을 부르고 있다.그러나 남아프리카와 중동.북아일랜드에서 용서와 화해를 통한 평화적 공존의 햇살이 속속 비치고 있다.
지금의 세계를 방대한「용서의 지대」와 몇몇「반목지대」로 나누는 새 분류법도 등장했다.「용서의 문」너머 평화와 번영에의 길이 있다고 한다.
12.12등 과거에 붙들려 있는 우리 사회가 뛰어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애는 바로 이「용서의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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