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捷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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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당(唐)의 노장용(盧藏用)은 진사(進士)에 급제했지만 아직 임용(任用)되지 못하고 있었다.그는 빨리 관리(官吏)가 되고 싶어 꾀를 생각해 냈다.장안(長安) 부근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에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상한 풍습이 있었다.은자(隱者)는 모두 고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세속적인 영달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학문을 익힌 사람들이나 은둔을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과연그의 작전은 주효하여 멀지 않아 고관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사마승정(司馬承禎)이라는 진짜 은자가 있었다.그 역시 종남산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고관들이 다들 하산하여 관직을 맡기를 청했지만 정말 도사였던지라 거절했다.
한번은 그가 관리들의 청에 못 이겨 장안에 내려왔다가 또 다시 거절하고 되돌아가던 길이었다.이때 그를 성밖까지 전송한 사람은 노장용이었다.멀리 종남산이 보이는 곳까지 오자 노장용이 말했다. 『종남산은 확실히 영험이 있는 산이지요?』 그러자 사마승정이 비꼬듯 말했다.
『글쎄,내가 보기에는 출세의 첩경(捷徑)일 뿐이지….』 노장용은 자신을 비웃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어찌할 수 없었다.
이처럼 「첩경」이라는 말은 본디 관리가 되기 위한 「지름길」을뜻했다.지금의 고시(考試)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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