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순례>21.김소희의 "물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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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네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아름다운 모습일까,아니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일까.쫓고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삶 가운데 가끔 스쳐가는 질문이다.
삶에 대한 성현들의 지혜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이럴 때 나는 김소희(金素姬)가 부른 노래「물레」를 흥얼거린다. 김소희를 이 시대 최고의 판소리 대가로 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그의 매력은 친화력있는 목소리와 절제된 꾸밈새,그리고 은근히 스며오는 호소력에 있다.
특히 남도민요에서 그 매력은 더욱 빛난다.
「물레야 돌아라.빙빙빙 돌아라.워러렁 워러렁 잘도 돈다.」『물레』의 가사 첫 부분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된다.바깥 출입을 못해 집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할머니들.그들이 이 실잣는 단순 반복노동을 통해 물레바퀴처럼 희비가 교차되는 우리네 인생사를 꿰뚫어 본 것이 아 닌가 생각한다. 이 민요는 담백한 맛을 풍기지만 선율은 다양하게 변모되는 세련된 노동요 그 자체다.이 노래가 깔끔한 까닭은 반복으로 일관된 수공업적인 노동 때문이다.반면 노동에 참여하는 인간의 정신세계는 천태만상의 환상을 누비고 생의 의미를 끝없 이 곱씹으며 펼쳐 나간다.
무기물로 억겁의 시간을 우주의 어디에선가 떠돌다가 어렵사리 한순간의 생을 부여받은 우리들.그리고 언젠가 다시 무기물로 환원되어 구천으로 흩어질 우리들.그러기에 선한 일을 하든,악한 일을 하든 모든 생명체가 소중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그 삶을 복되고 기쁜 일로만 장식하기를 바라는 영악한존재지만,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가 아닌가.물레를 돌리던 우리들의 선인들 역시 그런 생의 의미를 보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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