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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부시 다음은 허커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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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선거의 묘미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대결에 있다. 군웅할거(群雄割據)의 혼전 양상도 선거의 재미를 더한다. 다크호스도 필요하다. 갑자기 등장한 다크호스가 바람을 일으키며 선두 주자들을 막 치고 올라가는 상황 말이다. 지금 미국의 대선 판세가 그렇다.

2008년 미국 대선은 1월 3일 아이오와주(州)에서 실시되는 코커스(당원대회)로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대권을 꿈꾸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예비후보들이 통과해야 하는 당내 경선의 첫 관문이다. 첫 번째 승부처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등을 한 후보가 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돼 대권을 차지한 전례가 많다는 징크스 때문에 역대로 아이오와 코커스는 대선의 판세를 가늠하는 풍향계 구실을 해 왔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4주 앞두고 민주당은 예측불허의 접전 양상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격돌하는 가운데 대권 재수생인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뒤를 쫓는 2강 1중 구도다. 며칠 전 실시된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오바마(28%)가 힐러리(25%)를 제치고 선두에 올라서면서 1등을 노리는 힐러리의 허를 찔렀다. 에드워즈(23%)도 맹추격 중이다.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공화당이다. 그동안 공화당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거물들의 혼전 속에 아이오와에서는 롬니가 부동의 선두를 지켜 왔다. 하지만 아이오와주에서 실시된 최신 여론조사에서 이름도 생소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28%)가 롬니(25%)를 제치고 1위로 급부상했다. 줄리아니(12%)는 3위로 처졌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허커비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다. ‘허커비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 대선은 돈 선거고, 미디어 선거다. 누가 기부금을 많이 모아 광고를 많이 하느냐에 당락이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오와 코커스와 바로 뒤 이어 실시되는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선두권에 든 후보에게 언론의 관심과 더불어 정치헌금이 몰리고, 이를 발판으로 후보는 더욱 세를 불릴 수 있다. ‘눈덩이 효과’다. 1976년 조지아 주지사 출신의 무명 후보였던 지미 카터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하는 돌풍을 일으켜 결국 백악관 주인이 됐다.

남부 침례교 목사 출신으로, 올해 나이 쉰둘인 허커비는 낙태와 동성애, 총기규제에 반대한다. 당연히 창조론을 옹호한다. 소방수 아버지와 회사 경리사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허커비는 “‘아메리칸 드림’은 지금도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의 뿌리 깊은 기독교 보수주의 성향과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람들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의 정서가 허커비 돌풍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허커비는 아칸소 주지사 출신에 언변과 대중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빌 클린턴과 흡사하다. 기독교 복음주의의 신념과 가치에서는 조지 W 부시와 닮았다.

역대 대선에서 미 유권자들의 표심은 대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보자면 2008년 대선은 민주당 차례다. 힐러리와 오바마가 일단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여성 대통령이나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공화당은 그 틈을 노리고 있다. 허커비. 어쩌면 앞으로 한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할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