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부부 동반자살-늙고병든몸 자식들에 짐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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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남1녀의 장성한 자식들을 두고도 중풍과 요통에 시달리며 외롭게 살아온 노부부는 결국 인적없는 야산을 찾아가 서로 마주보며 목을 매는 동반자살을 선택했다.13일 오후 서울강동구고덕1동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노부부는 서울성동구송정 동 삼청연립1층에 세들어 살던 김윤호(金允鎬.67).허경례(許京禮.64)씨 부부로 밝혀졌다.
1년전 이곳에 이사온 金씨부부는 지난달 30일 몇개 되지않던가재도구를 모두 이웃들에게 나눠줬다.장롱하나,이불몇채,솥단지.
숟가락….애초 몇개 되지도 않는 세간이었지만 남들에게 전부 나눠주는걸 보고 이웃들은 『이제 자식들 집에 들어 가시나 보죠.
정말 잘됐네요』라며 기뻐했다.그러나 金씨부부는 쓸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金씨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했고 부인 許씨도 허리가 굽어 잘움직이질 못했다.
하지만 이웃들은 큰아들(48.대전거주.운전사)은 1년내 한번도 찾아오는걸 보지못했고 둘째(40.분당거주.이발사),셋째(35.무직.서울노원구월계동)아들도 사정은 엇비슷했다고 말한다.막내딸(31.경기도하남시신창동)만이「가물에 콩나듯」 찾아올 뿐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끼리 사시는게 얼마나 힘드셨겠어요.최근에는 자식들이 몇달째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는다는 말도 하시더군요.』 이웃주민 朴희숙(44.여)씨의 말이다.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훌훌 집을 나선 노부부는 그나마 정을 주던 딸집으로 찾아가 밤12시까지 있다 고향인 전남을 가보겠다며집을 나섰다.
노부부의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향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보고싶던 정든 산천,옛동무들을 찾아본 것으로 추정된다.노부부는 그뒤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됐다.
이들 부부의 호주머니에는 발견한 사람이 장례에 써달라는 뜻인듯 현금과 수표등 67만원이 들어있었다.하지만 혹시라도 자식들에게 누가 될 것을 두려워 한듯 주민등록증등 신원을 알수있는건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이들 부부가 갖고나간 전셋돈 3천8백만원과 저금한 돈등 5천여만원의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있다.
부부의 신원이 밝혀진 15일 오전,시체가 안치된 서울강동구 가톨릭병원 영안실에는 둘째아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모를 죽인 자식이 무슨 할말이… 이제 어떻게 하늘을 보고삽니까.』 자식의 때늦은 통곡만이 쓸쓸한 여운이 되고 있었다.
〈金東鎬.金寬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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