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 결핍 아이, 알고보니 시신경 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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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주위가 산만하고 말썽을 많이 펴 부모의 속을 썩였던 초등학교 4학년 김모군. 5분 이상 책을 읽으면 글자가 어른거리고, 눈이 아프다고 하면서 공부는 아예 뒷전이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내린 진단명은 주의력결핍장애였다.

그러나 최근 검사 결과 아이에겐 전혀 다른 질병이 숨어 있었다. 빛을 감지하는 시신경이 망가져 실제 사물을 보는데 장애가 있었던 것.

우리에겐 생소한 '얼렌증후군'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국내에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마인드&헬스의원 박형배 원장(M&H시지각연구소장)이 지난해 9월 미국에서 도입했다.

얼렌증후군이란 망막을 통해 들어오는 시신경세포가 정상인보다 작거나 미성숙해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뇌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특정한 파장의 빛을 감지하지 못해 시신경에 과부하가 걸리고, 이로 인해 눈의 피로.두통.혼란.어지럼증 등 증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의력 결핍장애의 4분의 1, 읽기 장애의 45% 정도가 얼렌증후군으로 나타났다.

얼렌증후군은 대부분 선천적이지만 일부에서 후천적으로도 나타난다. 스킨스쿠버 다이버로 활동한 박모씨가 대표적인 사례. 계단의 높낮이조차 구분하지 못했던 그는 필터로 빛을 차단한 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를 처음 발견하고 치료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미국의 얼렌 여사다.1980년대 정부로부터 학습장애아에 대한 연구의뢰를 받아 조사하던 중 환자들의 시지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리고 일정한 파장의 빛을 차단해 줌으로써 시신경의 과부하를 줄여주는 치료법을 개발한 것.

그녀는 자신이 직접 양성한 진단전문가에게만 치료 및 처방권을 주고 있다. 국내에선 박원장이 유일하게 진단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얼렌증후군으로 진단받으면 선별 검사 후 개인에게 맞는 필터를 찾아주는 검사를 한다. 그리고 처방전과 함께 안경을 미국 얼렌연구소에 보내면 안경에 필터를 붙여 회송한다. 검사 소요시간은 세 시간, 안경을 받기까지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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