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그들은 얼마나 걸었을까 - <대조영>의 발해 유민과 당나라 군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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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전쟁 장면은 드라마를 보는 흥분을 최고조로 올려놓기 마련이다. “장군님, 적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5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리로 오고 있다 합니다.” 이런 대사가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 편’(?),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드라마 속 주인공이 빛나는 지략으로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는 승리하기를 응원해 마지않는다.
보고를 하는 부하의 표정이나 보고를 받는 장군의 표정이 비장하기 그지없는 그 순간, 이 장엄한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생뚱맞은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간다.
‘꽤 긴 거리를 이동했을 텐데 저 5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어떻게 저렇게 후딱 전장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아~, 나도 안다. 드라마 몰입을 확~ 깨버리는 질문이다. 하지만 볼 때마다 매번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넘쳐나는 사극들 가운데서도 꽤 오랫동안 흥미롭게 지켜봐 온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그 궁금증은 드디어 폭발하고야 말았다. 대체 저 5만 병력이 이동한 거리는 얼마 만큼이며 그들은 얼마나 오래 걸어야 했던 것일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직접 계산해보리라! (불끈!)
대략의 상황은 이렇다.

<대조영은 안시성에서 고구려 유민과 4만여 병력을 이끌고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시성은 당나라 국경에서 너무 가까워 국가를 선포할 수가 없었고, 한 나라로서 제대로 성장하기도 어려웠다. 대조영의 참모군사 미모사와 대조영은 일찍이 세울 장소를 동모산으로 결정하고 성을 미리 축조해놓는다. 그리고 군사를 출발한다. 그러자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당나라의 측천황제는 10만의 토벌대를 보내 대조영을 막으려 한다. 군대는 동모산에 이르기 전 천문량이라는 지점에서 군대의 추격에 추월당한다.>

대조영의 군대는 안시성에서 먼저 출발했고, 당나라의 군대는 그 보다 더 서쪽에 위치한 장안성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어떻게 추월당할 수 있었을까? 첫 번째로 대조영의 군대가 피난민에 가까운 주민행렬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드라마 상에서는 당연히 짧은 순간에 추격과 추월이 일어난 것처럼 표현되지만 실제로 대조영의 무리와 당나라의 군대가 움직인 거리는 그다지 만만치 않았으리라.
우리가 먼저 파악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사전 과제는 대조영이 주둔하고 있었던 안시성의 위치다.
고구려는 요하(遼河)유역에 여러 방어성들을 설치했는데 안시성은 그것들 중에서 요동성(遼東城)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금사> 지리지에 따라 만주 개평 동북의 탕지보라 하는 얘기도 있고, 《이계집》 또는 《아방강역고》에 따라 만주의 봉황성에 해당한다는 얘기도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창다철도(長大鐵道)의 하이청(海城)남동쪽에 있는 잉청쯔(英城子)다.

<그림1>은 구글어스에서 랴오닝성의 ‘하이청’을 검색한 모습이다.

<그림2>는 하이청에서도 안시성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검색해 본 결과이다. 2006년 방송된에서 안시성의 위치를 추정한 위도와 경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안시성의 위치는 대략 하이청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안시성 위치에 초록색 성 모양의 표시를 해둔다.

<그림3> 안시성의 추정 위치를 조금 더 자세하게 바라보자. 안시성은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였으며 주변에 철광석 산지와 곡창지대가 있었다고 한다.

안시성의 위치를 확보했다면, 두 번째 사전과제는 대조영이 새롭게 수도로 준비해 놓은 동모산의 위치다.
동모산의 위치는 현재 중국 길림성(吉林省), 둔화현(敦化]), 성산자산(城山子山) 일대로 추정된다. 698년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뒤 이곳에 성을 쌓고 발해 최초의 도읍지로 삼아 ‘구국(舊國)’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림4> 왼쪽으로 길림(지린, Jilin)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둔화(Dunwha)가 보인다.

<그림5> 둔화현 안에서 동모산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해 보자. 성산자산 일대를 클릭하고 확대해 본 사진이다.

<그림6> 드라마에서는 대조영과 군사, 그리고 주민들은 안시성에서 동모산으로 이동했다. 안시성의 위치와 동모산의 위치를 각각 확인해보자.

<그림7> 안시성에서 동모산까지 어떤 길을 따라 걸었을까. 현재의 큰 도시들을 기준으로 길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으로 각 도시들을 잇는 길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산지보다는 평지를 중심으로 길을 만들어 보자. 대략 621.52km가 나온다.

다음에 이어지는 세 번째 과제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성은 어디일까라는 점이다.
당나라의 측천황제는 10만의 토벌대를 보내어 대조영을 막으려 한다. 당나라 군사가 출발한 장안성의 위치는 중국의 시안이다.

<그림8>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의 위치다.

<그림9> 당나라의 군사가 출발한 시안의 장안성, 대조영과 주민들이 출발한 안시성, 동모산의 위치를 한 눈에 살펴보자

<그림10> 장안성에서 동모산까지의 길을 만들어 보자. 이번에도 산지보다는 평지를 선택하고 각 도시들을 잇는 길을 만들어 본다. 대략 2196.60km가 나온다.

지금까지 과제 해결에 별 무리가 없었다면 이제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단계. 과연 대조영과 발해 유민들은 얼마나 걸었으며, 당나라 군사들은 어떻게 이들을 추적할 수 있었는가?
** 이상의 계산 결과에 따르면 안시성에서 동모산까지의 거리는 621.52km다. 유민들 중에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있었고, 수레와 짐이 많았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았을 것이다. 소가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가 8~12km. 그렇다면 이보다 더 느린 속도로 하루에 6km를 걷는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621.52 ÷ 6 = 103.586666........
따라서 대략 103~104일을 걷게 되는 셈이다.

** 장안성에서 동모산까지의 거리는 2196.60km다. 보병의 평균적인 행군거리는 하루 최대 약 30리(약15km)라고 한다. 하루 30리 이하의 행군 속도라면,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그 이상의 행군 속도는 낙오병이 생기고 피로가 심해졌을 것이다. <손자>의 ‘군쟁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발이 느린 치중부대를 버리고, 갑옷도 벗어두고 주야로 행군하여, 1백리(약50km)를 나아가 싸우면 전쟁터에 도착하는 병사는 1/10에 불과하고, 선봉 중군, 전군의 지휘관이 모두 포로가 되는 패배를 당하게 되며, 50리(25km)행군하여 싸우면 도달하는 병사는 1/2이며, 선봉 지휘관을 잃고, 30리(15km)를 행군하여 싸우면 전장에 도달하는 병사는 2/3이라고 한다. 이를 도달하는 병사는 정예병으로 기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역사서 <삼국지 100년 전쟁>에서도 평균적인 보병 군대의 진군 속도는 8~12km 정도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 속도는 가장 느린 치중부대의 속도로 나와 있다. 그래서 당나라 군사는 하루에 15km를 걸었다고 가정해보기로 하자.
6296.60 ÷ 15 = 419. 7733
그러므로 대략 419~420일을 걷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속도로 대조영의 무리를 따라잡기란 결단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당나라 군사들이 속도를 훨씬 더 높여 맹추격을 해 왔다고 가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평균 속도보다 세 배가 더 빠른 속도를 내 하루 동안 약 50km를 이동했을 경우,
6296.60 ÷ 50 = 125. 932
그래도 대략 126~130일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엉성하나마 이래저래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당나라 군사들이 대조영의 무리를 따라잡아 한판 전쟁을 펼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발해에서 이동하는 그들이 종로 일대를 오락가락 하다가 서로 부딪히는 것처럼 쉽게 만났을 리는 만무하다. 이런 계산으로 공연히 <대조영>의 역사 고증 논쟁에 한 발 디디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대체 얼마나 오래 걷고, 얼마나 빨리 걸어야 저런 대규모 전투가 가능할 수 있을지 그 궁금증을 해소해보려는 것이 이 계산의 유일한 목표일뿐이다. 궁금증은 물론 완전히 다 풀린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방법은 딱 하나다. 다시금 역사에 상상력을 보태는 것. 당나라 군사들이 특별한 지략을 발휘하고 듣도 보도 못한 신기술을 뽐내며 하루 평균 50km는 가뿐하게 이동했다거나,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대조영이 행렬을 멈춰 세워야만 하는 사건사고가 발발해 그들이 하루 6km를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객원기자 장치선 charity19@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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