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평>"아내란 직업의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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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전통윤리가 붕괴되는 자리에 경박한 서양문화가 들어앉으면서 성도덕의 혼란과 가정의 해체현상까지 나타나는 시기에 한번쯤 빠져들만한 연극공연을 호암아트홀이 제공하고 있다.그것이 바로 여인극장의 『아내란 직업의 여인』(서머싯 몸 작.강유 정 연출)이다. 불가사의한 남녀의 사랑과 부부윤리를 연결,매우 객관적이면서도 냉철하게 분석해내고 삶의 의미까지를 사유하게 하는 이 작품은 비교적 영국적이지만 우리의 건강한 부부관과도 상통할만큼 보편성을 지닌다.특히 도덕관이 다른 세 층의 여인상( 어머니.
아내.친구)의 창조야말로 이 작품의 성공을 기약한 것인데 중진여류연출가(강유정)의 예리한 심리분석을 장미자(어머니). 김미숙(아내).정경순(친구)이 노련하면서도 세련된 연기로 뒷받침해줌으로써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즉 장미자는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용의 미학을 중후한 연기로 떠받침으로써 무대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김미숙은 가정에서의 부부의 중요성을 화사하면서도 지적으로 창출,현부상(賢婦像)을 만들어냈으며 정경순은 절제력없는 낭만적 여인상 을 좀 과장되게 엮어냈다.
거기에 실수의 주인공 이호재는 능청스러울만치 의사남편역을 소화해냈고 늠름한 이승철은 멋진 영국신사상을 그럴듯하게 부조해 주었다. 전혀 개성이 다른 다섯 인물의 심리파악에 주안점을 둔강유정의 성숙한 연출이 노련과 발랄함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한편속도를 조절해줌으로써 군더더기 없는 환상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공연이 특히 아름다울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빼어난 인생통찰과 인간관계 설정에서 비롯되는 위트넘치는 대상의 묘미를 배우들이 세련되게 음미해준데다 정통무대에 걸맞은 화려한 의상도 큰 몫을 했다.그뿐 아니라 효과음악을 잘 쓰기로 소문난 연출이이번에도 장기를 발휘해 극단의 고정레퍼토리답게 전문극의 예범을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첫날 공연이어서 연기가 무대에 배어나지 않은 감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미숙한 공연이 판치는 요즘 연극가에서 이번 작품은 드물게 만날수 있는 성숙한 전문극으로서 관객은 부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볼 기회를 가질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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