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19> 한·중·일 소설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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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07년 한국 소설시장에 전쟁이 발발했다. 한·중·일 삼국의 소설이 한바탕 붙은 것이다. 전쟁은 초유의 일이며, 판세는 의외로 팽팽하다.

# 점령군 일본소설

한국 소설시장은 일본소설이 사실상 점령했다. 우선 공급 분야. 지난해 미국문학을 제치고 최초로 번역문학 분야 1위를 차지한 일본문학은 올해도 자리를 지켰다. 발행 부수는 225만 부. 지난해(153만 부)보다 30% 이상 성장했다(대한출판문화협회).

다음으로 수요 현황.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오른 작품 수에서 일본소설은 이태 전부터 한국소설을 능가한 상태다. 2005년 일본소설(27권)이 한국소설(22권)을 처음 앞질렀고 지난해엔 각각 31권과 23권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교보문고 분석).

100만 부 작가도 탄생했다. 오쿠다 히데오다. 오쿠다 히데오의 한국 진출작 1호는 『공중그네』(2005년 1월). 이후 3년도 안돼 그의 작품은 열 권이나 수입됐으며 그 판매 부수의 총합이 지난달 100만 권을 넘겼다. 『공중그네』는 지난주에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43위를 지켰고, 다른 히트작 『인 더 풀』은 최근 대학로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그의 국내 판권료는 20배 가까이 뛰어 현재 1억 원대를 호가한다.

# 게릴라 한국소설

올해 한국소설은 대체로 분발했다. 말하자면, 일본소설이 지배하는 소설시장에 독립군 한국소설이 반격에 나선 형국이었다.

돌격대장은 김훈의 『남한산성』. 4월 출간돼 지금까지 35만 부 이상 나갔다. 『남한산성』의 훈풍이 잦아든 7월엔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공세를 이어갔다. 10월엔 박완서가 단편집 『친절한 복희씨』를 들고 전장에 복귀했고, 그 사이 신경숙의 『리진』도 20만 부 달성이란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와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도 단편집으론 이례적으로 선전했다. 이 6권만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11월 말엔 한국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는 공지영마저 전선에 투입됐다. 『즐거운 나의 집』은 출간 나흘 만에 교보문고 종합 순위 5위까지 치고 올랐다.

여기서 잠깐. 올해 한국소설은 4000권, 일본소설은 583권이 출간됐다. 하나 교보문고 매출 점유율은 각각 36%와 24%를 기록했다. 무슨 소리냐고? 출간 종수 대비 일본소설이 한국소설보다 5배 이상 팔렸다는 말이다. 올해 한국소설의 분발을, 굳이 소수 정예의 독립군 활동에 빗댄 까닭이다.

# 중국 참전

올 한 해, 중국소설이 대대적 공습을 감행했다. 중국의 참전으로 소설 삼국지의 형세는 비로소 정립(鼎立)됐다. 특히 위화·쑤퉁·모옌 등 막강 전력의 중국 선발대가 한국에 본격 상륙했다. 올해 이들 셋의 작품만 18권(개정판 포함)이 새로 나왔고, 이들은 모두 한국을 방문했다. 위화가 현재 약 25만 부의 국내 판매고를 기록 중이지만, 중국소설이 아직 국내 시장을 장악한 건 아니다. 대신 일본 대중소설에 물린 한국 독자와, 턱없이 오른 일본소설 판권료에 기겁한 한국 출판사에게 중국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인 대체재다. 내년이 더 위협적이다.

하나 어쩌랴. 동방 삼국도 하나의 소설 앞에선 무력하다. 전 세계 ‘머글(Muggle)’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해리 포터』 얘기다. 완결편(전 4권)은 국내 출간 3주 만에 120만 부를 찍었고, 시리즈 전체는 1000만 부를 넘은 지 오래다. 삼국 동맹이 결성돼도 버거운 상대다. 그럴 수밖에. 인력이 어찌 마력에 대항할까.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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