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남북경협시대>中.어떻게 추진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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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산에서 소형전자부품회사를 경영하는 A씨는 고려민항편으로 평양에 도착했다.임금이 상당히 올랐는데도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 북쪽 인력시장 사정을 타진하려는 게 여행의 목적.
평양 시내에 현대.대우등 한국산 자동차가 많고전자상가에도 한글 상표가 붙은 텔레비전.냉장고.비디오.전화기 등이 널려 있다. 북한주민들은 이미 익숙해진 이 상표들이 남쪽 것인지 북쪽 것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시내와 외곽의 도로. 전기.항만 등 사회간접시설 공사장의「공사중」표시에선 낯익은 한국건설회사들의 이름이 보이고 남북한의 노동자들이 함께 땀을 흘린다.이들이 먹는 간식은 남북합작으로 북한에서 생산되는 라면과 국수다.남북사이에 신뢰가 쌓여 남북경협이 완숙단계에 접어든 언젠가의 북한모습이다.
정치적 통합보다는 이런 경제.사회공동체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지난 8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천명한 민족공동체방안이고 8일 발표된 남북경제교류 1단계조치는 이를 위한 첫 작업이다.
이 마지막 공동체형성단계는 북한이 미국.일본등과 수교하고 다자간(多者間)안보체제로 체제안정을 보장받아 핵계획을 완전히 보장할 때쯤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벌써 이런 장밋빛 기대를 입에 올리는 것은 성급하다.
걸림돌이 많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도 있다.
북한은 남쪽기업들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독일통일의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다.
북한이 90년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와 협력해 작성한「북한 투자유치 프로젝트」나 91년 일본에 내놓은「개발 수입품목리스트」를 보면 아직 북한이 소화할 수 있는 폭이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다만 이들 품목이 선진국보다는 한국 등 개발도상국과 협력하기에 적절한 수준의 경공업제품들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사양산업은 북쪽에 진출하지 않으면 버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정부가 봉제.완구.양말.가방.신발.피혁.전자부품 등「소규모 제조업」에 대해서는 당장이라도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대규모투자를 하는 데는 남북간 협력장치가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정치적으로 진폭이 있을 때도 경협이 영향이 안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호「투자보장」이 있어야 하고「이중과세방지」등 기업활동에 대한 보장도 있어야 한다.
송영대(宋榮大)통일원차관이 남북경협대책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대북(對北)투자를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남북경제협력의 모든 판단과 책임을 기업에 맡기고 정부의 교류협력기금은 남북 공동발전에 기여하나 수익성은 적은 사회간접시설 등 대규모 투자에 사용할 예정이다.
따라서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남북경협은▲남북한 기업인들의 방문과 투자상담▲사무소 설치▲중소기업들의 진출과 남한인들의 북한체류▲북한주민들의 한국산업 현장에서의 훈련등이 서로 맞물리거나 시차를 두고 진행되고,이어▲대기업들의 대규모투자▲ 남북한의 해외시장 공동진출▲북한 사회간접시설공사에 한국정부 참여 등의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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