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체육인 통독5주년 방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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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9일로 베를린장벽 붕괴5주년이 됐다.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89년11월9일이후 독일은 정치.경제는 물론 스포츠분야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동서독스포츠의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짚어보고 남북통일에 대비,타산지석으로 삼기 위 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책연구실 이종길(李鍾吉.교육학)박사가『스포츠과학』최신호에 발표한「독일통일과 스포츠 그리고 스포츠과학」을 간추려싣는다. [편집자註] 통일이전 동서독 스포츠는 체제의 이질성을반영하듯 다른 길을 걸었다.
서독이 만인을 위한 스포츠(Sports for All)에 치중한 반면 동독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스포츠,특히 엘리트스포츠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같은 차이는 스포츠예산에 그대로 반영돼 상대적으로 훨씬 부유한 서독이 연간 7천만달러를 지출한 반면 동독은 30배에 달하는 20억달러를 쏟아부었다.국가대표급 선수들과 전담코치 비율도 서독이 20대1에 불과한 반면 동독은 2~3대 1이었다.뿐만 아니라 동독은 자율을 중시한 서독과 달리 4,5세의 꿈나무를 발굴,스포츠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이후에도 계속 경찰.군.정부에서 통제하는 스포츠클럽에서 훈련케 했으며「사회주의스포츠영웅」등 각종 인센티브로 선수들의 의욕을 북돋웠다.
그러나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통일이 이뤄지면서 관주도의 동독스포츠는 민간주도의 서독스포츠에 융화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금메달제조공장으로 불렸던 35개의 올림픽센터들이 폐쇄됐고 무수한 스포츠학교들이 문을 닫았다.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지도했던 4천여명중 85%가 자리를 잃었다.
스포츠과학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특히 뇌에 전류를 보내 선수의 동기수준을 높인다든지 뇌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대사물질을 개발하거나 혈액도핑을 실시하는등의「비인간적 연구」는 더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됐다.
15개종목에 6백여명의 연구원들이 근무했던 라이프치히연구소도라이프치히대학의 스포츠과학부로 개편돼 대중스포츠의 향상을 위한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선수 자신들이었다.「위대한 스포츠기계」들은 풍요로운 삶을 박탈당해 하루아침에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들로서는 아직껏 동독스포츠의 기적을 꿈꾸는 중국등 다른 나라로 팔려나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다.그나마 못찾으면 스포츠기금에 의지한 채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하는 길밖에 없다.현재 약3천명의 동독스포츠스타들이 이 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변화는 자연히 일반인들,특히 동독인들의 스포츠의욕을 저하시켰다.
스포츠를 통한 벼락출세의 길이 극도로 좁아졌을 뿐만 아니라 경기장입장권.사용권등 부대비용이 훨씬 늘어나 동독인들의 대중스포츠 참여는 통일전에 비해 50%이하로 낮아지고 있다는 비공식집계다. 이에따라 통일독일의 스포츠연맹은 지난91년 이른바 황금계획(Golden Plan East)을 수립,진정한 스포츠통합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체제홍보의 도구역할을 하던동독스포츠와 자율성을 강조했던 서독스포츠가 융화하기까지 는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정리=鄭泰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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