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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작은 정부'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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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 지난달 11일 홋카이도 유바리(夕張)시 고난(幌南)초등학교에서는 폐교식이 열렸다. 인구 1만2300명의 유바리시가 재정 파탄으로 살림이 어려워지자 초등학교를 7개에서 1개로 통폐합하기로 하면서 첫 폐교 행사가 열린 것이다. 시 공무원들도 대량 해고되고, 보건소도 문을 닫았지만 일본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2. "생활보호 지원금 삭감을 중단하라. 일본 정부는 빈곤층을 버리지 말라." 지난달 30일 일본의 관청이 몰려 있는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ヶ關)에는 '복지천국'으로 불려온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항의 집회가 열렸다.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생활보조비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근로 저소득층의 수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가 생활보조비 삭감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복지제도를 모방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주창하던 일본의 복지정책이 급변하고 있다. 고도 경제성장의 훈풍을 타고 한때 '일본식 복지천국'은 한국이 부러워하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국가 부채가 천문학적 규모(11월 말 현재 834조 엔, 지난해 예산 260조 엔의 3.2배)로 불어나면서 '작은 정부'로 방향을 급격히 틀고 있다. 한국은 10년간 급격한 복지 확대로 '큰 정부'의 길을 걸어왔지만 세계 2위 '경제대국'에선 복지천국의 환상에서 깨어나며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과감히 줄이는 복지=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부 들어 본격화된 '큰 정부' 수술의 개혁 대상은 연금.의료.돌봄 서비스는 물론 빈곤층 지원에서도 진행 중이다.

가장 방만했던 의료보험은 내년부터 75세 이상 후기고령자 200만 명에 대해 별도의 의료보험제도 가입이 의무화된다. 연간 평균 7만 엔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반기부터는 진료비의 10%를 추가로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돌봄 서비스는 지난해 4월부터 등급을 2단계로 분리해 수혜자를 절반 수준으로 급격히 줄인 데 이어 돌봄 시설의 거주비와 식비까지 자기 부담으로 전환됐다.

연금은 지급 개시 연령을 5세 연장해 65세로 늦추고 매년 보험료율을 높여 수혜자 부담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장수국이 되면서 근본적 대책 마련은 쉽지 않다.

◆사회보장세 신설 추진=일본 정부는 특단의 대책으로 현재 5%인 소비세를 최소 10% 이상으로 올린 뒤 사회보장세로 돌려 사회보장비를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급진전되면서 사회보장비를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종신까지 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다른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고령자 의료비만 보더라도 2006년 11조 엔에서 2025년 30조 엔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내각부 추산으로 사회보장세율은 최소 8%에서 최대 17% 수준까지 해야 한다는 전망이다. 자민당으로선 도박이나 다름없다. 1989년 소비세를 처음 도입해 국민적 반발을 샀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정권에 이어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 역시 98년 소비세율을 5%로 올리면서 결정적으로 정치력을 잃고 물러났다.

후쿠다 정권은 아예 소비세를 사회보장세로 전환하고 세율도 올리겠다는 것인데, 불필요한 예산 삭감이 선행 조건이어서 '작은 정부'로의 개혁은 한층 불가피해졌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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