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함께 보는 판결] 심한 러브샷, 형사처벌 받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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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떨어져 구르는 낙엽을 보며 우수에 젖은 것이 얼마 전인데, 벌써 송년회니 망년회를 한다는 연락이 하나 둘씩 온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분위기가 무르익거나, 직장 동료들과 한 해를 보내는 것을 아쉬워하며 한잔 주고 한잔 받다 보면 적잖게 술을 마시게 된다. 급기야 폭탄주가 오가고 흥이 나면 ‘러브샷’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러브샷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 러브샷을 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남녀 사이의 ‘러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법원 판결은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면서 서로 마주보는 상태에서 술잔을 든 팔을 상대방의 목 뒤로 돌려 감은 채 동시에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러브샷을 정의한다(울산지방법원 2007노362). 문제는 최근 들어 러브샷이 법정에까지 오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고법은 직장에서 러브샷과 같은 성희롱 행위를 거듭한 직원을 징계해고한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문제의 직원은 회식 자리에서 부하 여직원들의 의사에 반해 러브샷을 하고 볼에 키스를 해 회사에서 경고조치를 받았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그 직원은 회사를 대표하여 참석한 다른 외국 회사들과의 업무회의 자리와 이어진 회식 자리에서 또다시 노골적인 성적 언행을 계속하다 회사의 위신을 크게 추락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법원은 성희롱의 상황, 행위의 상대방, 회사 내의 지위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회사의 해고는 정당한 징계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고 결론지었다.

이 판결문 중에 ‘문제의 직원이 한국식의 러브샷을 하며 신체 접촉을 하였다’는 법
원의 사실인정이나 ‘한국의 술 문화를 소개하다가 동료 여직원들과 러브샷을 하였다’는 직원의 변명이 나오는 것을 보면, 러브샷은 그 명칭이 이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지기 이전에는 직장·학교 등에서 신체나 언어를 이용한 성적인 접근이나 표현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이런 일을 법원에 가져가 재판을 통하여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도 희박했다. 그래서 정조(貞操)침해에 이르지 않는 여성의 성적(性的) 자주결정권은 사실상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은 인식에 변화를 주고 법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꾼 계기가 1993년에 발생한 ‘서울대 조교 사건’이다. 당시 20대 중반의 여성 조교가 50대 초반인 담당교수의 신체 접촉, 산책 제의를 거절했다가 그 보복으로 조교에 재임용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학교와 교수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치열한 법정 공방과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을 거쳐 결국 대법원에서 불법행위의 성립과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었다. 그 뒤 법률이 개정되거나 제정되는 등으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도 이루어졌다.

서울대 조교 사건은 법률적 공방 외에도, 당시로서는 생소한 ‘성희롱’이라는 말을 전국적으로 퍼뜨리면서 국민 개개인의 의식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필자는 당시 강원도에서 군법무관으로 근무하였는데, 군인·공무원들이 이 문제에 관해 다양한 견해를 밝히고 ‘초보 법률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희롱은 이제 더 이상 민사적 손해배상이나 징계해고에 그치지 않고 있다. 울산지법
은 위에서 예를 든 사건에서 ‘술잔을 든 팔을 상대방의 목 뒤로 돌려 감은’ 러브샷을 강제추행죄로 인정했다. 피고인이 골프장 소유자와의 친분을 내세워 골프장 내 식당 근무자들에게 억지로 강요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러브샷을 하였다가 졸지에 전과자가 된 것이다.

필자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교직의 특성상 젊은 여학생들과의 교류가 불가피하지만 지위나 학식을 앞세워 나이에도 걸맞지 않은 남녀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격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모임의 주흥을 위하여 인격을 너무 방기(放棄)하지 않을 일이다.

임정수 변호사 법무법인 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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