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과 명예 부르는 그들의 '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호 10면

변호사와 검사가 하루 아침에 ‘벼락 스타’로 떠오른다. 배심원 컨설턴트, 법정 화가, 소송 PR 전문가 같은 다양한 직업군이 새롭게 영역을 구축한다. 국민참여재판제 도입이 몰고 올 변화다. 이른바 ‘배심제 산업(The jury industry)’이 형성되는 것이다.

주목 받는 ‘배심제 관련 산업’

배심재판의 종주국 격인 미국에서 ‘스타 변호사(celebrity attorney)’로 뜨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데이비드 보리스(65) 변호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연 소득이 700만 달러(약 65억원)에 이르는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 미국 대통령 선거 소송, 엔론 사건 같은 굵직한 사건을 맡았다.

그의 승소 비결은 복잡한 사안을 단순 명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에 있다. 법정에서 쓰는 말이 가족과 식사할 때 쓰는 말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평이한 단어를 구사한다. 법정에 서면 메모 없이도 소송 서류의 쪽수와 관련 통계를 정확히 제시한다. 비상한 기억력은 배심원의 신뢰를 끌어낸다. 일반 사건에선 시간당 750달러(약 70만원)를 받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재판에 정부 측 대리인으로 나설 때는 시간당 40달러(약 3만7000원)만 받았다. 2000년 대통령 선거 소송에서 무보수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대변하는 등 이미지 관리에도 철저하다.

법정화가 마릴린 처치가 그린 존 레넌 살인사건 재판 장면. 레넌에게 총을 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법정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ABC 방송의 전파를 탄 이 그림으로 처치는 1981년 에미상을 받았다. 다연출판사 제공

마이클 J 퓨즈(62) 변호사는 기업손해배상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8년 포드자동차를 상대로 한 제조물 책임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긴 그는 2002년 세계적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와 싸워 280억 달러(약 26조원)의 흡연피해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의 배심원 설득은 철저히 전략·전술에 따른 것이다.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배심원 후보들의 신상정보를 외운 뒤 그들과 만날 때 이름을 부른다. 재판정에선 배심원단석에 가까운 변호인석 맨 끝에 앉는다. 1m90㎝에 가까운 장신인 그는 변론할 때 무릎과 허리를 구부려 키를 낮춘다. 배심원과 눈을 맞춤으로써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검사로는 엘리엇 스피처(48) 뉴욕주지사가 꼽힌다. 1992년 뉴욕 맨해튼 검찰청 소속 검사로 일하던 그는 최대의 마피아 조직에 주목한다. 뉴욕 지역의 트럭 운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갬비노 패밀리’ 수사에 나선 것. 문제는 패밀리의 철벽 방어막을 뚫을 증거를 찾는 일이었다.

스피처는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를 고안해냈다. 맨해튼 웨스트사이드 35번가에 직접 봉제공장을 차리는 것이었다. 수사비로 기계를 사들이고, 30명의 일꾼을 고용했다. 감청장치도 설치했다. 몇 달 뒤 갬비노의 조직원이 찾아와 “트럭 회사를 바꾸면 다리를 부러뜨려 놓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녹취했다.

행동대장 격인 타미 갬비노 등이 연루됐다는 증거도 확보해 나갔다. 배심 재판에 가봤자 유죄 평결을 받을 것이 분명해지자, 갬비노 측은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자백감형제)을 통해 1200만 달러의 벌금을 내고 트럭 시장에서 손을 떼기로 한다. 스피처는 재판에서 박력 있고 집요한 증인신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스타 검사’ 경력을 바탕으로 1998년 주 검찰총장에 이어 지난해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돼 정치적 꿈을 일구고 있다.

미국에서는 변호사 업계를 지원하는 소송 컨설팅 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이 중에서 ‘배심원 컨설턴트’는 일반화돼 있는 직종. 배심원 후보자들의 나이, 직업, 취미, 학력, 인종, 범죄경력 등을 조사해 의뢰인 쪽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큰 후보자들을 골라내는 일을 한다.

“턱수염을 기른 남자는 독립적이고 권위에 도전하는 성향이 있으니 기피해야 한다”는 식의 노하우를 제공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과학적인 심리분석 결과를 활용하고 있다.

소송 PR 전문가도 배심 재판의 한 축을 담당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될 수 있도록 특화된 홍보기술을 제공한다. 변호사 출신으로 소송 전문 PR 대행사인 ‘PR 컨설팅 그룹’ 대표인 제임스 해거티는 자신의 책 『여론의 법정에서(In the court of public opinion)』를 통해 “소송에서 이기고도, 여론재판에 진다면 기업 이미지를 망치게 된다”고 강조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직종이 법정 화가다. 1935년 린드버그의 아들 유괴사건 재판을 계기로 연방·주 법원이 법정 내 사진촬영을 금지하면서 재판 장면을 그려 언론에 제공하는 법정 화가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존 레넌 살인사건 재판을 그림으로 중계해 에미상을 수상한 마릴린 처치는 “죽느냐 사느냐, 자유냐 감금이냐를 두고 분투하는 드라마를 그리는 내 일에 한 번도 지겨움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