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절차 보장 측면선 긍정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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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13면

1995년 10월 LA 법원 법정에서 무죄 평결이 선고되자 O J 심슨이 주먹을 쥔 채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심슨은 이후 피살자 유족들이 낸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3350만 달러를 배상하면서 결국 파산 상태에 빠지게 된다. 중앙포토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O J 심슨 재판이 시작된 무대는 끔찍한 살인현장이었다.
1994년 6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가 브렌트우드. 이곳에서 미식축구 영웅인 심슨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남자친구 로널드 골드먼이 난자당한 시체로 발견됐다. DNA검사 결과 살해 현장에서는 심슨의 혈흔이, 심슨의 차에서는 니콜과 로널드의 혈흔이 나왔다. 경찰은 심슨의 집에서 현장에서 발견된 장갑의 다른 한 짝을 찾아냈다.

O J 심슨 재판은 배심제의 그림자인가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5일 만인 6월 17일 친구의 차를 타고 도주하는 심슨과 이를 쫓는 경찰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헬리콥터를 동원한 방송사의 생중계로 미국 가정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심슨의 유죄는 기정 사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1년4개월 뒤인 1995년 10월 3일 심슨의 살인 혐의에 대한 배심원단의 평결 결과는 유죄가 아니라는 것.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배심원단의 구성
심슨 재판의 배심원단 12명은 흑인 9명, 백인 2명, 그리고 히스패닉 1명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10명이었다. 이처럼 흑인 배심원이 많았던 것은 검찰의 재판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LA 카운티(郡)는 여러 개의 재판 관할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서부지구의 관할이었다. 서부지구의 인구분포를 감안할 때, 배심원 대부분이 백인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경우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LA 검찰청의 질 가세티 검사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중부지구에 심슨을 기소하게 된다.

검찰은 대부분 흑인들로 채워진 배심원단이 흑인 영웅인 심슨에게 유죄를 내리면 누구나 그 결과를 수긍하지 않겠느냐고 봤다. 유죄 평결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중부지구를 택한 것은 검찰의 큰 실수였다. 대부분의 백인이 백인인 전처와 백인인 그 남자친구를 살해했다는 심슨의 혐의에 대하여 유죄라고 믿은 반면 대부분의 흑인은 그렇지 않다는 게 여론조사 결과였다.

원칙대로 서부지구에서 심슨을 기소하였더라면, 평의 4시간 만에 무죄 평결이 내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검찰은 여성 배심원들이 피해자인 브라운에게 깊은 동정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흑인 여성 배심원들은 피해자가 여성이란 측면보다 자신들의 남자 형제, 부친, 또는 삼촌이 백인 경찰관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에 더 주목했다.

증거를 둘러싼 공방
검찰은 72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723개의 증거를 제출했다. 변호인 측은 54명의 증인과 392개의 증거로 맞섰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담당 경찰관인 마크 푸어먼의 위증을 끌어냄으로써 배심원들의 머릿속에 ‘합리적인 의심’을 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마크 푸어먼은 현장수사를 지휘하고 심슨의 집에서 피 묻은 장갑을 발견한 장본인. 그는 인종차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자신은 흑인을 비하하는 비속어인 ‘니거(nigger·검둥이)’라는 단어를 평생 사용한 적이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곧바로 변호인단은 푸어먼이 과거 한 시나리오 작가와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공개했다. 그 테이프에서 푸어먼은 “냄새나는 검둥이들” “검둥이 수놈” “멍청한 검둥이들”이라고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무려 41차례나 ‘nigger'를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푸어먼은 “훌륭한 경찰관이라면 혐의자를 골목으로 끌고 가서 대갈통을 날려버릴 줄 알아야지” “범인을 감옥에 처넣기 위해 증거에 손을 대야 할 때가 있어. 경찰은 신이야”라는 말도 자랑스럽게 하고 있었다.

결국 푸어먼의 위증을 지적함으로써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의 신빙성에 큰 타격을 준 셈이다.

평결에 대한 평가
심슨 사건은 유죄가 분명해 보이는데도 배심 재판을 통해 유죄 혐의를 벗었다는 점에서 배심제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사례로 쓰이곤 한다. 부유한 사회 명사였던 심슨은 자신의 부와 명성을 이용해 저명한 변호사들을 변호인단으로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이 사건에서 오히려 배심원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배심원 제도가 없었다면 백인 2명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흑인 남성으로서는 제대로 방어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형사재판의 목적은 ‘진실의 추구’가 아니라 '정의의 추구’이다. 정확한 결론에 이르는 것보다 정의에 부합하는 공정한 절차의 보장이 중요하다. 심슨 사건에서 이런 절차와 시스템이 훌륭하게 작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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