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는 절반, 즐거움은 두 배 (3)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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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08면

거짓말도 이 정도면 예술 - 라이어1탄

연말 무대에 오르는 작지만 울림은 큰 공연들

레이 쿠니의 희곡이 원작인 ‘라이어’는 연극으로서는 신화적인 흥행을 기록한 공연이다.

2000년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을 시작한 ‘라이어’는 지금까지 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고, 2004년부터는 그 속편인 ‘라이어 그 후 20년’ ‘튀어!!’를 시작했다. 배우 다섯 명과 방 두 칸이 전부인 이 작은 연극은 어느새 브랜드에 가까운 커다란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주진모·공형진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라이어’의 이야기는 한 남자의 스케줄이 어긋나면서 시작된다. 택시 기사 존 스미스는 윔블던과 스트리트햄을 오가며 바쁘게 살고 있다. 두 여자 메리와 바버라와 결혼해 두 집 살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간과 야간 근무를 절묘하게 조율하며 행복을 즐기던 그는 사고를 당하면서 곤란에 처하게 된다.

형사가 집에 찾아와 이중결혼이 들통나게 된 것. 이때부터 죽마고우까지 끌어들인 그의 아슬아슬한 거짓말 이어가기가 시작된다.
거짓말은 생활의 작은 구멍과도 같아서 한 번 커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호미로 막을 것을 끝내는 가래로 막게 된다. ‘라이어’는 그런 묘미를 영리하게 이용하는 연극이다.

한 여자에게 거짓말을 시작하니 다른 여자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져 거짓말이 창대한 덩어리를 이루기에 이른다.
놀라운 순발력과 어이없는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존 스미스는 마침내 자기 거짓말에 짓눌려 압사당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된다.

쉴 새 없는 수다와 가벼운 슬랩스틱이 웃음을 그치지 못하게 만드는 연극. ‘라이어 그 후 20년’은 존 스미스가 낳은 이복 남매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면서 또 한 번 위기에 몰리는 이야기고, ‘튀어!!’는 야쿠자의 돈가방을 주운 남자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쏟아놓는 이야기다. 두 편 모두 현재 공연 중이다.

2008년 1월 1일까지/ 샘터파랑새극장 1관/ 문의: 02-747-2090
2008년 3월 2일까지/ KS 청담아트홀/ 문의: 02-515-5880
일반 2만5000원, 중·고생 1만5000원

죽어 석 잔 술보다 살아 한 잔 술 - 염쟁이 유씨

몇 대째 가업을 이어온 염쟁이 유씨는 마지막 염을 하는 장소에 예전부터 취재를 졸랐던 기자를 부른다. 그가 염하는 시신은 턱없이 가벼운 젊은 남자의 시신. “목숨이 자기 혼자 것인 줄 아느냐”며 그 젊은이가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녔는지 탄식하던 유씨는 실뭉치처럼 여러 개로 타래가 진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염쟁이만은 하기 싫다며 도리질 치던 젊은 시절, 수십 년 염을 하며 겪었던 숱한 죽음의 사연들과 만났던 귀신들, 어미가 죽었는데도 밖으로만 도느라 돌봐주지 못했던 어린 아들의 기억. 배우 유순웅은 이 많은 이야기와 인물을 온전히 혼자 연기해낸다.

아니, 이따금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도움을 받는다. 극 중 기자를 연기하는 인물은 유순웅에게 지목 당한 관객. 묻는 말에 답하고 물건이나 시신 옮기는 일만 거들면 되지만 수줍고 어색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다른 관객들도 상주와 며느리로 불려나가거나 유씨의 지휘하에 다 함께 곡을 해야 한다.

‘염쟁이 유씨’는 2004년 청주에서 공연을 시작해 지방 무대를 돌다가 2006년 서울연극제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대학로에 들어온 연극이다. 거의 쉬는 기간 없이 공연을 계속해 온 ‘염쟁이 유씨’는 이번이 여섯 번째 앙코르 공연.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염쟁이 유씨’는 시신을 주물러 경직을 방지하고 몸의 일곱 구멍을 막는 ‘수시(收屍)’에서, 시신의 입에 엽전이나 불린 쌀을 넣어주는 ‘반함(飯含)’을 거쳐 염포로 감싼 시신을 칠성판에 올려 놓는 ‘대렴(大殮)’에 이르기까지, 염하는 절차를 빼놓지 않고 세세히 이르는 연극이다.

그런데도 웃음과 신명이 흐르는 까닭은 유씨가 말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이어진 연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하므로, 죽음을 대하는 염쟁이 또한 삶의 기운이 넘쳐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남지 못하는 죽음의 허무함, 죽음을 재촉하는 못된 세상에 대한 한탄이 웃음 사이에서도 서늘하게 가슴에 스민다.

12월 31일까지/ 두레홀 2관/ 문의: 02-741-5970
일반 2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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