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겐 고문도 쾌락? -호스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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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14면

저예산 공포영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을 들은 ‘호스텔’이 제작 2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한다. ‘호스텔’은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고문 영화의 대표작으로 ‘쏘우’ 시리즈와 함께 폭력의 극단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잔혹한 본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영화는, 폭력의 미학을 추구하는 퀜틴 타란티노가 제작을 맡고, ‘케빈 피버’에서 집요한 신체 훼손의 탐구를 거친 일라이 로스가 연출을 맡았다. 이들이 작심하고 피범벅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해 뭉쳤으니 그 결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동유럽을 여행 중인 미국인 배낭족 팩스턴(제이 허난데즈)과 조시(데릭 리처드슨), 우연히 동행이 된 올리(이토르 구드욘슨)는 미녀들을 유혹하기 좋다는 한적한 마을로 향한다. 이들은 우연히 같은 방에 묵게 된 늘씬한 미인들과 술을 마시고 놀지만, 그 사이 올리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다음날 바에서 술을 마시던 조시는 두통을 호소하며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고, 그가 깨어났을 때는 낯선 장소다. 그곳은 여행자를 납치해 부자들에게 돈을 받고 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인간 도살장이다.

‘호스텔’이 보여주는 집단의 광기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폐해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 단지 좋은 집과 자동차 혹은 물건을 사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생명까지 거래 품목으로 만드는 전지전능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호스텔’은 사회 비판이나 심오한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철저한 오락영화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맞이하는 죽음은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호스텔’은 유혈 낭자한 끔찍한 고문 행각으로 단조로움에서 벗어난다.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전기톱은 사정없이 몸 속을 파고들어 사지를 절단한다.

한 일본인 여자는 용접기에 의해 얼굴이 녹아 내리는 고문을 당한다. 납치된 이들에게 ‘호스텔’은 지옥이지만, 부유한 이들에게는 쾌락을 살 수 있는 시장의 역할을 한다. 일부 장면이 삭제됐지만 ‘호스텔’이 발산하는 폭력의 섬뜩함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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