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초등생 납치해 동자승 강요…2년간 '달마도 앵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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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의 초등학교 여학생을 납치, 동자승(童子僧)차림으로 2년간 끌고다니며 '앵벌이'를 시켜온 4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金모(49.무직.경남 김해시 진영읍)씨는 2002년 2월 말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Y아파트 앞길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朴모(11.당시 초등교2)양을 흉기로 위협, 자신의 거처이던 유성구 장대동 모 원룸으로 끌고갔다.

金씨는 朴양을 원룸 화장실의 세면기 배수 파이프에 쇠사슬로 묶은 뒤, 머리를 강제로 자르고 승복을 입혔다. 자신도 승려로 위장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

이후 金씨는 朴양을 앞세워 그림을 팔러 다녔다고 한다. 고객들의 동정을 받기 위해서였다. '앵벌이 품목'은 자신이 교도소에서 익힌 '달마도'였다. 지하철 등에서 단순히 돈을 구걸하거나 껌 등을 파는 것보다 수입이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金씨는 이후 최근까지 경북 구미, 경기도 양평, 경남 김해.마산, 부산 등의 주택가나 상가 등을 다니며 그림을 팔았다고 한다.

달마도 한장을 5천~1만원에 팔아 金씨의 월평균 수입은 50만~1백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스님 행세를 한 사실이 탄로날까봐 2~3개월마다 거처를 옮겼고, 식사는 주로 중국집이나 분식집 등에서 값싼 메뉴로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金씨는 朴양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협박하고 회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부산의 조직 폭력배 출신이다. 도망가면 너와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수시로 을러대기도 했고, 온몸에 새긴 흉측한 문신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朴양은 납치당한 지 3개월쯤 뒤인 2002년 5월 구미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金씨가 낮에 수퍼에 물건을 사러 간 사이 도망쳤다가 동네 어귀에서 발각됐던 것. 그날 밤 朴양은 동네 뒷산으로 끌려가 매장 위협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朴양은 경찰에서 "탈출에 실패한 뒤에는 너무 무서워 도망갈 엄두를 못 냈다"고 진술했다.

金씨는 지난해 4월 만난 金모(36)여인과 사귀면서 朴양이 필요없게 되자, 지난 3일 마산에서 朴양을 대전행 고속버스에 태워 풀어줬다.

경찰은 그동안 전단 5천여장을 배포하고 현장 주변 수색, 목격자 탐문, 부모의 원한관계 등 다각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모두 허탕을 쳤다.

경찰은 대전에 돌아온 朴양의 기억을 더듬어 경남 김해의 사글셋방에 있던 金씨를 검거했다. 朴양 부모들은 "그동안 딸을 찾아 전국을 안 찾아다닌 데가 없다. 어린 학생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확인하러 다니는 등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한편 대전 둔산경찰서는 15일 특가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혐의로 金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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