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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아트, 경계를 허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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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24면

1. 루이비통 크리스마스 윈도 작품 ‘위도 48.914 / 경도 02.286’

21세기는 하이터치 시대, 즉 감성의 시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데카르트 마케팅이다. ‘나는 예술이다. 고로 나는 잘 팔린다.’ 기술(technology)과 예술(art)을 합친 이 신조어는 모노톤 일색이었던 전자제품들이 가장 먼저 수용하면서 마케팅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포인트는 디자인에 예술적 터치를 불어넣어 삶의 질을 높인다는 데 있다. 하지만 아직 기술과 아트의 만남은 유명 작가들의 고전 또는 그 이미지를 단지 차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패션과 아트는 아름다움(美)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목적이 같고, 소비층도 같아서 일찌감치 귀족문화, 고급문화의 범주 속에서 동행해 왔다. 현대 패션은 대중이라는 잣대를 고민하면서도 아티스트와의 컬래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을 통해 상업적으로 혹은 브랜드 이미지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꾸준히 진일보했다.

그중 루이비통의 업적은 눈부시다. 1998년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마크 제이콥스는 100살이 넘은 모노그램 백에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일본의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손을 잡았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무라카미 라인과 체리 블로섬 백이다.

루이비통은 건축·인테리어 아티스트들과도 긴밀하다. 평균 1년에 7~8회 정도 교체되는 쇼윈도는 동시대 최고 아티스트들의 독창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열린 전시장이다. 로버트 윌슨, 올라프 엘리아슨 등 유명 현대미술작가들과 함께 작업해왔던 루이비통은 2007년에는 발랄한 젊은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맡겼다.

존 갈리아노, 스텔라 매카트니, 알렉산더 매퀸 등의 모교로도 유명한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한 결과 크리스토퍼 윌슨과 마르코스 비얄바의 ‘위도 48.914 / 경도 02.286’이 최종 결정됐다. 파리 근교에 위치한 루이비통의 역사적인 워크숍의 지도상 위치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현재 전 세계 370여 개 루이비통 매장 쇼윈도를 장식 중이다.

명품 브랜드 로에베의 39로드백39 런칭 기념 예술사진들. 3. 한국의 조세현-북한을 배경으로 39길39 표현 중국의 호렁슁-만리장성과 갑옷입은 동상 그리고 빨간 로에베 문양 (왼쪽 위) 4. 중국의 호렁슁-만리장성과 갑옷입은 동상 그리고 빨간 로에베 문양 (왼쪽 아래) 5. 홍콩 작가 윙시야- 영화 화양연화를 연상시키는 작품. (오른쪽 위) 6. 스페인의 쉐마 마도즈-로에베 로고를 사막의 발자국으로 연출(가운데1) 7. 대만의 린톈푸-시공을 초월해 변화의 길을 가는 여성(가운데 2) 8. 싱가포르의 레이먼드 리- 카페에서 세상의 길을 관조하는 시선(오른쪽 아래)
5. ‘창조=커뮤니케이션으로 통합된 영혼’이라는 주제하에 이루어진 일러스트레이터 고스미 겐타의 작품이 프린트된 와이즈 레드라벨 의상. 6. 제2회 ‘설화문화의 밤’에 초대된 한국 정신의 모태가 되는 자연과 호랑이를 담았다.

한편 에르메스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에르메스 상’을 수여하는 등 예술의 발전에 오랫동안 열정을 쏟아왔다. 지난해 개장한 플래그십 스토어 에르메스 도산파크 3층에는 지속적인 예술 후원을 위해 아트 스페이스가 마련돼 있다. 내년 1월 6일까지는 스코틀랜드 작가 마틴 보이스의 ‘정지된 호흡(Suspended Breath)’이 전시된다.

서로 다른 장르와 호흡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다

패션과 아트의 컬래보레이션 프로젝트는 새로운 제품의 디자인 기획단계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반대로 제품이 출시된 이후의 이벤트와 맞물리는 경우도 흔하다. 설명하면 새로 출시되는 제품의 이미지를 확고히 인식시키고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또는 기존 제품의 이미지를 리뉴얼하기 위해 아티스트들과 조우하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의 명품 브랜드 로에베는 이번 시즌에 새롭게 선보이는 ‘로드백(road bag)’의 론칭을 기념해 자국의 유명 사진작가 쉐마 마도즈와 함께 흥미로운 아트작업을 진행했다. 주제는 ‘진정한 여행’의 정신을 담고 있는 로드백의 심플하고 견고한 디자인, 섬세한 디테일과 함께 ‘로드(road·길)’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쉐마 마도즈는 로에베 로고를 사막의 발자국으로 연출한 흑백사진을 통해 초현실주의적인 자신의 작품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사진이라는 매력적이고 자유로운 매개체를 통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영향력을 판단한 로에베는 이번에는 아시아 사진작가 5명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한국 작가 조세현의 ‘길’은 가장 가깝지만 갈 수 없는, 그래서 단절된 아픔을 이야기하며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

홍콩의 윙 시야는 영화 ‘화양연화’를 연상시키는 1930년대 상하이를 무대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아름다움과 로맨스로 향하는 길을 표현했다. 중국의 보도사진가로 유명한 호렁슁은 만리장성과 갑옷 차림의 동상을 배경으로 로에베의 문양이 매치된 사진으로 동양과 서양 사이에 이어진 길을 이야기했다.

대만의 린톈푸는 전통과 관습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이어오면서 시공을 초월해 끝없이 변화의 길을 가고 있는 대상을 여성으로 지목했다. 싱가포르의 레이먼드 리는 카페 한구석에 앉아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길을 관조하는 여성의 시선을 잡아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문화의 메세나(mecenat:문화예술·스포츠 등에 대한 원조 및 사회적·인도적 입장에서 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활동을 총칭하는 용어)로서 꾸준히 활동해온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는 2006년부터 ‘설화문화의 밤’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잇고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지원하기 위한 행사로 지난해의 주제는 ‘한국의 아름다운 색’이었다. 2회째인 올해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양’을 주제로 6인의 작가가 작품을 선보였다. 이 중 여섯 작품은 신라호텔에 자리를 잡고 한국문화를 알리는 전령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다.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 와이즈(Y’s)는 매 시즌 비대칭적이고 구조적인 패턴을 선보여 왔다. 그중 와이즈 레드 라벨은 정직하고 강하게 살아가는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로, 이번 시즌에는 일본의 대중적인 일러스트레이터 고스미 겐타와 함께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카키색 캔버스와 화이트 바탕 위에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프린트된 고스미 겐타 특유의 선명한 컬러의 일러스트는 여성에 내재해 있는 분노와 열정이 목소리를 가지고 세상에 자기 주장을 외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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