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성과주의는 과연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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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성과주의의 허상
다카하시 노부오 지음,
정경진 옮김,
오즈컨설팅그룹,
263쪽, 1만2000원

기업이 한해 실적을 정리해야 하는 연말이 다가왔다. 요즘엔 기업뿐 아니라 많은 샐러리맨들도 한해 성적표를 내야 한다. 성적표에 따라 손에 들어오는 돈이 달라진다. 한해 동안 어떻게 일했는지 점수가 매겨진다는 게 영 기분 나쁘지만 연봉제·성과급·실적급이 실시되는 기업에서 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외환위기 이후 연봉제를 실시하는 기업이 더 많아졌다. 조사기관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대략 60~65%의 기업이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봉제나 성과급, 실적급은 ‘성과주의’의 산물이다. 실적에 따라 보상한다는 것이다. 쉽게 거역하기 힘든 명제다. 이를 거부하면 평등주의자, 무사안일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열심히 일하는 엘리트 사원과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는 무능 사원을 동등하게 대우하자는 주장이냐고 욕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성과주의에 극렬하게 반대한다. 반대 논리도 과격하다. “성과주의나 연봉제의 저변에는 ‘자르는 논리’가 깔려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성과주의는 무능한 경영자의 자기도피처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사회주의자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겠지만, 웬걸, 경영학을 전공한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다. 회사원을 위해 성과주의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회사를 제대로 키우려면 성과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식 연공제’의 장점을 신봉한다. 구닥다리 일본식 연공제가 21세기에도 제일 좋은 제도라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탁월한 제도라는 것이다.

일본식 연공제는 종신고용과 연령별 생활비 보장형 임금체계를 골간으로 한다. 이 때문에 흔히들 연공서열, 즉 입사 시점과 나이 순으로 손잡고 차례대로 가는 게 일본식 연공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연공제가 연공서열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일본식 연공제란 능력과 실적의 차이를 ‘급여’로 보상하는 게 아니라 ‘차기 일의 내용’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능력과 실적에 따라 일의 내용이 가속적으로 달라지고 이어 승진·승격에 차이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일본식 연공제에서도 엘리트 사원과 무능 사원은 구분이 되지만 보상의 내용이 ‘급여’가 아니라 ‘다음에 할 일’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허즈버그(Frederick Herzberg)의 ‘동기부여-위생(motivation-hygiene)이론과 데시(Edward L. Deci)의 ‘내발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이론’ 등을 동원한다. 사람이 보수 때문에 일할 때보다 일 자체에 몰두할 때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원래 인간은 재미있기 때문에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제도가 일본식 연공제라고 주장한다. 한두 해 성과를 내는 것보다 중장기적 발전을 원하는 회사라면 성과주의를 버리고 이 제도를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훌륭한 일본식 연공제가 왜 평가 받지 못하는 걸까. 서구 경영학계에서는 일본 경제 상황에 따라 일본적 경영에 대한 평가가 오락가락했고, 일본 경영학계에선 사대주의 때문에 일본적 경영을 외면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최근엔 일본이 저성장 상태에 빠지면서 기업들이 당장 실적을 내기 위해 정리해고와 연봉제로 대표되는 성과주의를 택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을 출판한 오즈컨설팅의 최명돈 대표컨설턴트는 한국 경영자들도 이 책을 읽고 성과주의를 밀고 나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이 기분 나쁘더라도 기업 경영자와 관리자는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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