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12.허술한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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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金門橋)는 다리 모양의 미려함이나주위 경관과의 조화,구조의 견고함등 다리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리 건설의 교과서적 조형물」로 꼽히고 있다.
금문교가 이같은 명성을 얻게된데에는 설계.시공이 철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후의 완벽한 유지.관리가 더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 단적인 예가 1937년 다리 건설이후 50년간 들어간 유지.관리비가 건설비의 무려 2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해마다 건설비의 4%에 상당하는 돈을 유지.관리에 쏟아 부은 것이다.
구조물이 강재(鋼材)로 이뤄져 있고 총길이가 1천2백80m로이번에 붕괴된 성수대교(1천1백16m)와 비슷하지만 건설된지 57년이 지나도록 새다리처럼 유지되고 있는데에는 이같은 각고의노력이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성수대교의 유지.관리는 어떠했는가.서울시에 기록이 보존돼 있는 86년이후 성수대교의 유지.보수실적을 보면 86~93년까지8년간 투입된 총비용이 6억2천4백38만원으로 한해 평균 보수비용이 7천8백만원에 불과하다.성수대교 건설비가 1백15억8천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해 유지비가 건설비의 고작 0.67%밖에 안된다.건설된지 15년만에 무너진 성수대교와 그보다 4배나 오래됐지만 아직 새 다리나 다름없는 금문교 사이에는 그 세월의 차이만큼 벌어진 유지.관리에 쏟은 각별한 정성이 있었던것이다. 성수대교와 같은 철골트러스교로 금문교보다 1년 앞서 건설된 베이 브리지(Bay bridge)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연결하는 다리 길이 13.6㎞의 대형 구조물로 캘리포니아 교통부산하에는 아예 이 다리의 관리를 전담하는 별도 회사가설립돼 있다.이 회사에서는 미국 연방도로국(AASHTO)의 교량유지관리 시방서에 따라 2년마다 다리의 도면을 포함한 모든 사항을 점검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그 보고서의 두께가 어른이 양쪽 팔을 벌려도 닿지 않을만큼 엄청난 분 량이라고 한다.또 이번 성수대교의 붕괴지점에 해당하는 힌지(Hinge)와 상판.
트러스연결핀,각종 볼트 및 너트등은 5년마다 정기적으로 검사하며 페인트칠을 새로 해주고 있다.그런데 다리 길이가 워낙 길다보니 한번 칠하는데 무려 14년 이 걸려 처음 칠을 시작한 팀이 다리의 3분의1 지점에 이르면 또다른 팀이 그위에 새로 칠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처음 다리 도색작업에 들어간 페인트공이 전구간을 두번 칠하고나면 아들세대가 그뒤를 따라서 칠을 해오고,다시 두번을 더 칠하고 나면 손자세대가 이어받는 길고도 지루한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처럼 완벽한 유지관리 덕분에 하루 평균 통과차량이 25만대에 이르는 이 다리의 안전에는 아직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고 있고 지난 89년10월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강도7.1)때도 상판 15m가 붕괴되는데 그쳤다.그러나 성수대교 의 경우는79년10월 완공된 이후로 종합적인 점검보고서가 한번도 나오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면적인 재도색작업은 다리가 건설된지 9년만인 88년에야,그것도 올림픽에 대비한 환경미화 차원에서 단 한번 이뤄졌다.지난 8년간의 유지관리 비용 6억2천만원중 이 단 한차례의 재도색비용이 68%인 4억2천만원에 이른다는 점을감안하면 실제 한해평균 유지관리 비용은 고작 2천4백92만원으로 건설비의 0.21%에 불과하다.평소의 유지관리가 얼마나 엉성했나 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교량이 설계수명을 지속할동안 콘크리트교량의 건설비와 관리비 비율이 7대3이라면 강교(鋼橋)는 그 반대라는 것이구조기술사들의 분석이다.금문교의 경우에서도 이는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그래서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강교의 관리 를 지나칠 정도로 엄격히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기록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보존하고 있다.특히 강재의 특성상 부식 방지가 다리의 안전에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영국의 경우에는 교량의설계당시에 부식관리계획을 같이 작성 토록 하고 있다.
또 미국은 모든 교량에 대해 2년을 초과하지 않는 일정한 주기로 유자격자에 의한 종합점검을 하되 이번 성수대교의 경우처럼새로운 구조 또는 기존에 건설실적이 없는 구조를 사용한 교량에대해서는 보통의 교량보다 짧은 주기로 세심한 검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선진국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안전점검을 일반공무원이 아닌 유자격 기술자들이 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우리와 관리체계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점검결과는 점검원의 자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로▲매일 1 회의 일상점검은 관련분야를 전공한 대졸후 3년,전문대졸후 5년,고졸후 8년이상의 경험자▲매년 1회의 정기점검은 대졸후 5년,전문대졸후8년,고졸후 10년이상의 경험자들이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점검원의 자질이 점검후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번 성수대교의 경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성수대교의 이상이 구체적으로 인지된 것은 지난해 4월말이었고이에 따른 손상보고서가 서울시에 올라간 것은 4월말과 5월 두차례로 알려져 있다.이는 손상보고가 이루어진 시점을 전후한 4월26~27일,4월29~30일,5월14~15일 6일간에 걸쳐 성수대교 점검을 했었다는 굴절사다리차의 운행일지결과에서도 확인된다.문제는 당시에 이미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진「상현재의 신축이음장치와 크로스빔(수직재로 추정)의 이탈」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긴급한 상황이 발견됐는데도 보고서 한장만 올리고는 위에서 지시가 없다고 해 그냥 방치해둔 것은 현장 관리책임자의 무신경과 보고만 하면 면책이 되는 우리사회의 관료주의적 발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이 지나다니는 교량과 같은 주요 구조물에 대해▲관리할 예산도 제대로 배정해 놓지 않고▲제대로 자질을 갖춘 인력을 배치하지도 않으며▲이상이 발견돼도 제대로 손을 쓰지 않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관리체제에서 『그나마 15년이 나 버티어 왔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전문기술사들의 냉소적 반응은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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