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이착륙 가능 무인비행기 개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무인기. 29일 전남 고흥의 연구원에서 수직 이착륙 시험을 하고 있다. 프로펠러의 방향이 0~90도로 변한다.

29일 오전 전남 고흥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센터. 약간 쌀쌀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이 연구원의 스마트무인기사업단을 이끄는 임철호(사진) 단장의 입에선 “시험 비행하긴 딱 좋은 날씨군” 하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무인기 개발에 5년을 매달려 온 그였다. 무인기 시제품의 천이비행(수직 이착륙 비행)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운명의 시각이 다가왔다. 외부 파일럿 세 명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부 파일럿 셋도 관제 차량 안에서 계기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틸트로터(Tilt-Rotor)’에 달린 프로펠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틸트로터는 프로펠러의 방향을 0∼90도로 바꿀 수 있다. “왱~” 하는 굉음과 함께 길이 2m쯤 되는 무인기가 헬기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빨라져 2분 만에 200m 상공으로 솟구쳤다. 잠시 후 틸트로터가 비행체의 정면을 향하면서 무인기는 선회비행을 시작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40㎞를 기록했다. 약 10분간의 선회비행을 마치고 틸트로터는 이륙한 곳으로 돌아와 안전하게 착륙했다.

“해냈다.-” 임 단장과 단원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험 비행 장면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참석자들도 박수를 보냈다. 임 단장의 머리에는 그간의 마음고생이 병풍처럼 스쳐갔다. 엔진을 제외한 모든 설계와 동체 제작을 우리 기술로 진행하면서 ‘과연 뜰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시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5년간 450억원의 연구비를 들이고 실패할 수는 없었다.

“가장 힘든 과정은 비행체가 수직 이륙 후 수평 비행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었지요. 시제품 5대를 제작했는데, 두 대는 전환 과정에서 잘못돼 고흥만 간척지 물속에 빠져버렸죠. 한 대는 뭍으로 떨어져 수리 중입니다.”

이륙 때 지면과 90도를 이루던 틸트로터 축의 각도가 최대 속도로 비행하려면 0도로 내려와야 했다. 한데 20도 근방에서 균형을 잃으면서 추락을 거듭했던 것이다. 구삼옥 시험평가팀장은 “ ‘마(魔)의 20도’ 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 30여 명의 단원은 한동안 소주를 입에 대지 않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대략 20도라 일종의 징크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천이비행의 성공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무인기 기술 선진국으론 그 밖에 이스라엘·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러시아 등을 꼽는다. 하지만 미국 이외에 천이비행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미국도 천이비행을 성공시키는 데 7∼8년 걸렸다. 스마트무인기사업단은 이 시제품으로 다양한 성능시험을 한 뒤 2009년부터 길이 5m, 시속 500여㎞의 상용 무인기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시제품은 상용화할 무인기의 40% 크기인 셈이다.

임 단장은 “틸트로터형 무인기는 인구밀도가 높고 활주로 확보가 곤란한 국내 환경에 적합하고 정찰·감시 같은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인 항공기로 제품 라인을 확장할 경우 자가용 비행기 시대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