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해에서 보는 국악현주소 창작국악 변변한 작품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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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악의 해를 맞아 크고 작은 국악 공연이 7백회를 넘는등 양적인 팽창을 이루고 있으나 창작국악은 이벤트성 행사의 뒷전에 밀려 이렇다할 작품도 못내놓고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80년대 이후 국립국악원 합주단 외에도 KBS국악관현악단,서울을 비롯한 시립.도립국악관현악단,민간단체로는 중앙국악관현악단.세종국악관현악단이 창설되어 청중과의 만남이 빈번해졌다.기존의 정악으로는 레퍼토리의 한계에 부닥치게 되었고,방 중악(房中樂)을 넘어 KBS홀이나 세종문화회관같은 대규모 장소에서 많은청중들을 상대해야 했다.
따라서 편곡을 통한 기존 음악의 재해석은 물론 현대적 감각의창작곡들이 필요하게 되었다.최근 국악관현악단들이 즐겨 연주하는창작곡은 88년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박범훈『사물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신모듬』과 김희조『김죽파류 가야금 협주곡』,이상규『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이강덕『가야금 협주곡 제1번』,황병기『가야금 협주곡 침향무』등.
특히 민요 편곡으로는 민요를 주제로 한 합주곡『흥』,김영재 『방아타령 주제에 의한 세마치』,박범훈『창부타령을 주제로 한 굿거리』『아리아리』,김영재『방아타령 주제에 의한 해금협주곡』등이 있다.
그러나 협주곡.변주곡.소나타와 같은 서양음악의 형식을 차용해쓴 작품이나 정악.민속악 등 전통음악의 선율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가야금.
사물놀이.민요.판소리의 인기 연주자를 대형 무대 에 내세우는 경우나 민요.산조 선율을 관현악곡으로 편곡 내지는 변주해놓은 경우 독주선율이 작품 속에 용해되지 않고 물위의 기름처럼 겉돌때가 많다.
원래 독주 음악인 판소리나 산조를 합주나 협주로 둔갑시킬 경우 원래의 즉흥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또한 독주악기와 관현악이 토막처럼 분리될 경우 합주의 의미가 전혀 없게 된다.
곡의 전개에서 지나치게 서양화성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서양식 오케스트라를 위한 민요편곡을 국악관현악으로 옮겨 놓은 것같은 곡도 있다.민요가 서로 다른 악기로 여러번 반복된다는 것외에는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다.따라서 민요편곡의 단계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함은 물론이다.
창작 국악관현악의 특징은 오선지 악보에 기록된 작품을 지휘자의 신호에 맞추어 연주한다는 점이다.악기나 복장만 다를 뿐 음악이 연주되는 상황이 서양음악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음악 자체도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다.대중성의 확보가 앞으로 국악의 과제이긴 하지만 관현악의 연주효과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국악.작곡과 통합” 이같은 현상은 전통음악의 보존에 주력하다보니 창작 분야에 대한 관심과 대접이 상대적으로 소홀한까닭인 것으로 해석된다.한편 국악과와 작곡과의 작곡전공을 통합하자는 의견도 음악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고,음량과음역의 확대 를 위해 개량악기의 수용문제도 적극 검토되고 있는실정이다.
국악관현악단이 정악과 민속악을 모두 수용하는 용광로 역할을 충분히 해내기 위해서라도 이제 편곡이나 차용이 작곡으로 용인되는 풍토는 극복되어야 할것이다.
***〈李長職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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