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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길 떠나는 책 ① -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필동 골목길의 스펙터클

중앙일보

입력

추억의 일기장을 펼치듯 필동 골목길을 떠올린 건 최근 읽은 어느 평론가의 산문집 때문이다. 그 책, 김영진의 <평론가 매혈기>(마음산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지금은 개보수해 멀티플렉스로 변신한 구 대한극장은 한때 동양 최대의 객석을 보유한 대형 극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극장은 70밀리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헐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상영한 70밀리 영화가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였다. 이 영화를 70밀리 스크린으로 본다는 역사적 체험에 흥분한 나는 구닥다리 영화를 굳이 왜 보느냐는 후배들을 꼬드겨 함께 극장에 갔다. 그리고 생전 처음 대형 스크린이 주는 영상과 사운드의 압도적인 감동에 취한 그들이 극장을 나와서 잠시 비틀거리는 것을 봤다. 돌비 서라운드 스테레오로 청각을 홀리지 않고도, 영화가 갖고 있는 이미지의 깊이만으로도 젊은 관객을 취하게 만들 만큼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대단한 유혹을 발휘했던 것이다.”

필동의 골목길과 대한극장, 그리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니…. 하지만 결코 뜬금없는 조합이 아니다. 한 영화 평론가가 추억하는 대한극장과 <아라비아의 로렌스>만큼이나 그 세 조합은 내겐 필연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마지막 상영작으로 대한극장에 걸렸을 때, 그곳에 김영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멀티플렉스로 새롭게 단장을 하기 전의 ‘구 대한극장’ 1300번대 좌석에 앉아 있었다. 10년을 훌쩍 넘긴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건 바로 앞좌석에 전유성과 남희석 등 당시 최고의 개그맨들이 자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철거를 앞둔 극장이라는 사실을 끝내 숨기지 못한 채 영화 상영 도중에 천장의 조명 기구가 무너지는 해프닝이 벌어졌기 때문도 아니다. 김영진의 지적대로 70밀리 영화의 장대함 때문이었다. 이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 펼쳐진 ‘구닥다리 영화’의 진경 때문이었다.
난, 오마 샤리프가 연기하는 알리 족장이 지평선 끝에서 한 개의 점으로 나타나 사막의 아지랑이를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살아 꿈틀대는 거대한 벽화가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선 느낌이었다. 계면이 없는 무한한 공간을 존재감으로 채우는 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의 가공할 만한 스케일은 말 그대로 장인의 것이었다. 첫 관람은 싸구려 초대권으로 때웠지만, 그 후로도 두 번 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하는 대한극장을 찾았던 건, 이런 스크린 스케일의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지 않은 조바심이 봄비처럼 나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현실 역시 그랬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마지막 상영작으로 ‘구’ 대한극장은 자취를 감췄다. 정색하고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건물은 예전처럼 ‘대한극장’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하긴 고만고만한 객석의 상영관을 여럿 보유한 매끈한 멀티플렉스에서 과거의 풍모,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아우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애석한 건 그 시기를 전후로 대한극장의 주변 풍경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이때의 ‘달라진 주변 풍경’은 전적으로 ‘내 마음의 풍경’이다. 남산 한옥마을이 들어서면서 부채질을 해댄 주변 풍경의 변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길’이었다.
‘구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작정한 날이면, 나는 영화 상영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슬금슬금 필동의 골목길을 배회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구할 것 같은 ‘한국의 집’ 담장,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기똥찬’ 저가 ‘짜장면’ 맛의 ‘필동반점’, 당대 최고의 에로 비디오 제작사인 유호 프로덕션의 단골 촬영지였던 세일장, 그리고 오랜 산보에 지친 다리를 마음껏 부려놓을 수 있었던 녹두서점 지하 1층…. 필동을 상징하는 나만의 명소(!)들은 아직까지 여전하다. 문제는 필동반점을 경계로 남산 방향으로 나 있었던 여러 갈래 골목길의 운치였다.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서 랜드마크로 불리는 남산을 바라보면서 긴 골목길을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건 산책자들에겐 최고의 지복이다. 그 와중에 수시로 출몰하는 적산가옥 풍의 건물들이 안겨주는 감흥은 지복에 찍힌 방점 같은 묘미였다. 거듭 말하면, 그건 쉽게 찾아보기 힘든 복제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생각해보라. 1960년대 걸작 한국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는 흑백 풍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물론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필동의 골목길을 사랑했던 건 아니다. 그 골목길에 진짜로 홀렸던 이유는 가급적 천천히 걷게 만들고, 가급적 천천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 안에서 난 언제나 가벼운 흥분과 평온한 감정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게 바로 필동 동사무소가 발행한 주민등록증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수시로 충무로 쪽으로, 정확하게는 필동의 골목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던 사연이다.
지금의 필동 골목길에는 그런 힘이 없다. 주변 환경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골목과 골목을 잇는 중간 허리쯤에 큰 길이 나면서부터 매가리 없는 길이 되고 말았다. 골목의 허리가 댕강 잘려나간 셈이 돼 버렸으니 운치를 운운할 사정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이 도시를 떠나지도, 눌러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대로의 속도감이다. 대로를 달리는 기계장치들의 최고 미덕은 속도다. 배려 없는 질주로 대로를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기계장치들의 속성이다. 그 와중에 ‘걷는’ 인간은 그저 어설프게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면 나는 고래 뱃속의 요나처럼 골목길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시인 오규원의 시 한 구절을 경구처럼 중얼거리면서 골목 안쪽에 지친 몸을 부리곤 했다. 시인은 말했다. ‘골목길은 휘어지기를 즐긴다’고. 골목은 결코 단번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한 눈에 담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걸음걸음마다 시선을 두게 되는 골목길의 오브제란 대한민국 어디에서건 그다지 색다를 게 없다. 똑같은 골목길 풍경은 달리 말해 진부한 장면들이다. 그러므로 내게 중요한 것은 ‘휘어지기를 즐긴다’는 골목의 스펙터클을 즐기는 일이었다.

필동 골목길의 스펙터클은 70밀리 영화가 안겨주는 스펙터클에 비할 건 못되지만, 나를 뒤흔든 감흥만으로도 기억해 둘만한 것이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알리 족장의 존재감만큼은 아니지만, 산책자의 존재감 정도는 챙겨주는 배려가 필동 골목길에는 있었다. 꼬불꼬불한 여느 골목길과 달리 알맞은 직선 길이의 코스와 몇 번의 커브로 이어진 깊이감 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회색 도시에서 강압적으로 지워졌던 존재감이 희미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감흥을 안겨주는 골목길 하나가 어느 샌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영화와 관련된 가장 거대한 추억 한 장면을 선사한 ‘구’ 대한극장과 함께.

문미루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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