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마 샤리프가 연기하는 알리 족장이 지평선 끝에서 한 개의 점으로 나타나 사막의 아지랑이를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살아 꿈틀대는 거대한 벽화가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선 느낌이었다. 계면이 없는 무한한 공간을 존재감으로 채우는 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의 가공할 만한 스케일은 말 그대로 장인의 것이었다. 첫 관람은 싸구려 초대권으로 때웠지만, 그 후로도 두 번 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하는 대한극장을 찾았던 건, 이런 스크린 스케일의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지 않은 조바심이 봄비처럼 나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구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작정한 날이면, 나는 영화 상영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슬금슬금 필동의 골목길을 배회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구할 것 같은 ‘한국의 집’ 담장,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기똥찬’ 저가 ‘짜장면’ 맛의 ‘필동반점’, 당대 최고의 에로 비디오 제작사인 유호 프로덕션의 단골 촬영지였던 세일장, 그리고 오랜 산보에 지친 다리를 마음껏 부려놓을 수 있었던 녹두서점 지하 1층…. 필동을 상징하는 나만의 명소(!)들은 아직까지 여전하다. 문제는 필동반점을 경계로 남산 방향으로 나 있었던 여러 갈래 골목길의 운치였다.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서 랜드마크로 불리는 남산을 바라보면서 긴 골목길을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건 산책자들에겐 최고의 지복이다. 그 와중에 수시로 출몰하는 적산가옥 풍의 건물들이 안겨주는 감흥은 지복에 찍힌 방점 같은 묘미였다. 거듭 말하면, 그건 쉽게 찾아보기 힘든 복제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생각해보라. 1960년대 걸작 한국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는 흑백 풍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지금의 필동 골목길에는 그런 힘이 없다. 주변 환경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골목과 골목을 잇는 중간 허리쯤에 큰 길이 나면서부터 매가리 없는 길이 되고 말았다. 골목의 허리가 댕강 잘려나간 셈이 돼 버렸으니 운치를 운운할 사정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이 도시를 떠나지도, 눌러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대로의 속도감이다. 대로를 달리는 기계장치들의 최고 미덕은 속도다. 배려 없는 질주로 대로를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기계장치들의 속성이다. 그 와중에 ‘걷는’ 인간은 그저 어설프게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면 나는 고래 뱃속의 요나처럼 골목길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시인 오규원의 시 한 구절을 경구처럼 중얼거리면서 골목 안쪽에 지친 몸을 부리곤 했다. 시인은 말했다. ‘골목길은 휘어지기를 즐긴다’고. 골목은 결코 단번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한 눈에 담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걸음걸음마다 시선을 두게 되는 골목길의 오브제란 대한민국 어디에서건 그다지 색다를 게 없다. 똑같은 골목길 풍경은 달리 말해 진부한 장면들이다. 그러므로 내게 중요한 것은 ‘휘어지기를 즐긴다’는 골목의 스펙터클을 즐기는 일이었다.
필동 골목길의 스펙터클은 70밀리 영화가 안겨주는 스펙터클에 비할 건 못되지만, 나를 뒤흔든 감흥만으로도 기억해 둘만한 것이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알리 족장의 존재감만큼은 아니지만, 산책자의 존재감 정도는 챙겨주는 배려가 필동 골목길에는 있었다. 꼬불꼬불한 여느 골목길과 달리 알맞은 직선 길이의 코스와 몇 번의 커브로 이어진 깊이감 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회색 도시에서 강압적으로 지워졌던 존재감이 희미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감흥을 안겨주는 골목길 하나가 어느 샌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영화와 관련된 가장 거대한 추억 한 장면을 선사한 ‘구’ 대한극장과 함께.
문미루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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