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10.다단계 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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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특별 취재팀〉 ▲金英宗차장(팀장) ▲崔永振부동산팀기자 ▲朴義俊경제부기자 ▲李光薰부동산팀기자 ▲洪承一부동산팀기자 ▲申成湜사회부기자 수술칼을 든「병원」집도의(執刀醫)가 돈을 주고 의사면허증을 빌린 돌팔이의사라면 어떻게 될까.생각만해도 아찔한 일이다.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또한 우리의 건설현장이다.
돌팔이의사는 한사람만 다치게 할 뿐이지만 건설공사를 무면허업자들이 날림으로 하게 되면 이번 성수대교사고처럼 수십명,아니 수백명이 죽거나 다치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건설업계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다.
실제로 발주처로부터 일감을 수주한 원청업자가 전체공사의 80%가량을 하청업자에게 맡기는 게 관행이다보니 거의 모든 공사를하청업자가 수행하는 것이 현실이다.문제의 심각성은 하청업자가 직접 공사를 하는 게 아니고 하청. 재(再)하청 .재재(再再)하청.재재재(再再再)하청으로 내려가면서 떼어먹는 액수의 크기만큼 공사금액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이문이 박하다 보니 자격있는기술자를 쓸 수가 없어 재하청 단계로 접어들면 현장에서 일하는사람은 대부분 무면허업자들로 채워 지게 된다.60~70년대,모내기철만 되면 벌어졌던 물대기 싸움의 원인은 물이 아랫논으로 내려갈수록 줄어든다는데 있었다.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더 담아둘 욕심으로 자기논의 물꼬 크기를 모두들 조금씩 줄였고,아랫논은 언제나 수확이 부실할 수밖에없어 모내기철만 되면 물꼬싸움으로 날밤을 새우곤 했던 것이다.
건설업계의 하청구조가 꼭 이모양이다.애당초 빠듯 한 공사비에서하청단계마다 곶감 빼먹듯 떼어먹고나면 막판에 공사를 맡은 업체는 철근을 빼먹거나 레미콘에 물을 타지 않고선 본전을 건질 수없게 돼 있는 것이다.
지난해 건축의장 전문업체인 S건업은 대전지역 업체인 Y건설로부터 원도급금액(5억5천5백만원)의 90%인 5억원에 하청을 받았다.S건업은 이 금액의 15%를 뗀 4억2천5백만원에 평소거래가 많았던 작업반장(오야지)에게 재하청을 줬 다.작업반장도자기가 맡은 일이 많다는 이유로 소반장(세와)에게 5%를 떼고4억3백여만원에 다시 하청을 주었다.원청업체인 Y건설이 애당초6억5천3백만원짜리 공사를 85%에 낙찰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최종공사비는 발주금액의 62%선 으로 떨어지고 말았다.다단계하청의 가장 흔한 형태가 「원청업체→하청업체(영업담당이사)→작업반장→소작업반장」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다.실제로는 전혀 별개의 하청업자면서 하청업체에 이름만 등재된 영업담당 이사가 전문적으로 원청업자들로부 터 공사만 따와 공사금액의 10~15%를떼고 작업반장에게 다시 하청을 주고,반장은 다시 5%정도를 먹고 인부 7~8명을 거느리고 있는 소반장에게 재재하청을 주게된다. 이 경우 발주처에 보고되는 서류에는 하청업체가 공사를 직접하는 것처럼 돼 있으나 실제로는 두단계를 뛰어 넘어 무면허업자인 소반장이 공사를 하게된다.이때 영업이사는 수주금액의 3~5%를 면허대여료로 하청업체에 주게된다.
영업이사는 고정적으로 자신이 등재된 하청업체에면허대여료를 주기 때문에「부금이사」로도 불린다.하청업체마다 3~10명의 부금이사를 거느리고있는 게 보통이다.하청업체가 영업담당이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수주해 재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70~80%의 하청업체들은 이 두가지 형태를 병행하면서 재하청으로 생기는마진과 영업이사에게서 받는 면허대여료를 함께 챙기고 있다.
원청업자들은 로비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위장직영이라는 대담한 불법하도급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실제로는 정상적인 하청가격보다 10%이상 싼 값으로 무면허업자를 불러들여 공사를 하면서도 마치 직접 공사를 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착복하는 것이다.예를들어 1백억원짜리 공사를 80%에 몰래 하청을 주면서 직영으로 신고하면 그 차액인 20억원이 고스란히 뒷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이런 짓을 하다 원청업체가 역으로 무면허업체로부터『위장직영 사실 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당하는 웃지못할 일도 생긴다.지난해에도 L社가 30억원,Y社는14억원을 이런 식으로 뜯긴 것으로 알려졌다.
「임 200,부 50,실 10….」 무슨 암호처럼 보이는 이글씨는 조그마한 미장 전문업체를 경영하는 C사장(41)이 깨알같은 글씨로 비밀수첩의 한 귀퉁이에 적은 내용이다.C사장이 T건설로부터 평촌신도시의 어느 아파트 건축의장 공사를 하청받을 무렵인 지난해 중순에 T社 공사관리 담당 임원.부장.실무자 5명에게 상납한 내역이다.
***원청업체에 로비 공사물량은 한정돼 있고 전문업체수는 많다보니 하청을 받는데도 경쟁이 치열해「원청-하청」간 거래에도「검은 돈」이 깊숙이 얽혀있다.하청업체들은 원청업자로부터 공사를따기 위해 공사관리 담당임원.공사관리 또는 공무부장.실무자등에게 2백 만~4백만원의 뇌물을 바쳐야한다는 게 정설로 굳어있다. 한개 공사에 공종별로 한개업체만 선정한다고 가정했을 때 전문건설업 19개 공종에다 전기통신.설비등 21개 공종에 각각 3~5개의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에 3억원안팎의 뇌물이 원청업체에 건네진다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뇌 물을 주고공사를 못땄을 경우에도 다음 공사를 위해 투자를 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P社 사장 李모(45)씨는『하청업체들은 법정 비자금을 훨씬 초과하는 원청업체 로비자금을 장부처리하기 위해 작업반장들로부터아는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대량으로 빌려오게 해 이들의 이름까지인부로 올려 노무비로 처리하는 촌극을 매번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李씨는『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부 대형건설업체에서 시행초기단계에 있는 우수협력업체 양성제도를 확산시켜 우수업체를 양성하고 원도급공사 입찰단계서부터 하청업체를 미리 정해 함께 입찰에 참여하는 부대입찰 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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