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3년 대전 엑스포 도우미들 재집합 "그때 열정으로 여수 대회 돕고 싶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활약했던 도우미들이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위해 다시 뭉쳤다. 왼쪽부터 이경·김경숙·김은희·강천학·원서희·서금숙씨. [사진=김상선 기자]

"14년 만에 다시 열리는 엑스포에서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28일 오후 서울 중구 다동 한국관광공사 10층 '대전 엑스포 동우회' 사무실에 30대 중.후반의 여성 6명이 모였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활약한 '원조 도우미'들이다. 하루 전 여수 엑스포 유치 성공 소식을 접한 도우미 동우회장 김은희(37.주부)씨의 긴급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온 것이다. 모두 당시 활약을 떠올리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꿈 많은 '미스'였던 도우미들은 이제 자녀를 둔 30대 '미시'가 됐다. 하지만 세련된 매너와 미소는 여전했다.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 14년간 장롱에 고이 넣어 둔 당시 제복이 아직도 꼭 맞는다고 했다.

도우미라는 용어는 대전 엑스포에서 처음 등장했다. '관람객을 도와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란 뜻의 순 우리말이다. 당시 25 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600여 명의 도우미는 대전 엑스포 성공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대전 엑스포가 끝난 뒤 도우미들은 아나운서나 MC, 항공사승무원, 예절강사 등 도우미 특기를 살려 사회생활에 적극적이었다. 또 한아이의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했다. 바쁜 일상생활을 하던 이들은 세월이 흘러 자녀들이 성장하고 가정과 직장생활이 안정되자 2005년 초에 다시 뭉쳤다. 연락이 닿은 100여 명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날 모임에서 이들은 여수 엑스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대전에서 KTX를 타고 급히 상경한 회장 김씨는 "현장에서 뛰어본 경험을 살려 도우미 선발 심사위원이나 교육강사로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통역 도우미였던 원소희(38.영어강사)씨는 "아직 내 영어 실력 죽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도우미 하면 안 되나"라며 맞장구를 쳤다.

강천학(37.주한 브라질 대사 비서)씨는 "여수 엑스포 유치위에서 브라질 대사에게 연락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는데 유치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며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여수 조직위에서 원하면 언제든 달려가 돕겠다'는 의견을 모았다.

도우미 활동 이후 예절강사로 일했던 김경숙(34)씨는 "얼마 전 대전 과학공원에 갔다가 한빛탑을 보고 그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여수 엑스포도 대전 엑스포처럼 성공적으로 마치길 바라고 행사가 끝나도 열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동기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