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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원자바오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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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 대통령:“제가 느낀 걸 말씀 드리려고….”

지사:“고견을 부탁 드립니다.”

노:“싱가포르의 경쟁력은 정부의 끝없는 창의와 혁신, 치열한 인재 육성 그리고 환경과 법치 아, 무엇보다 국민 화합을 이끌어내는 리더십…. 지금 당장 우리도 변화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어요.”

지사:싱가포르에 대표단을 보내 제주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노:모든 부처에 전력을 다해 싱가포르를 배우고 제주를 도우라 지시했습니다. 우리도 힘을 합쳐 제주를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세계적 금융·물류·관광 허브로 만들어 봅시다.”

물론 대선을 코앞에 둔 노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신경 쓸 만큼 한가롭지 않을 것이다.

노 대통령과 함께 아세안 정상회담을 다녀온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그는 귀국하자마자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을 찾았다. 창 장관은 연례 업무 보고차 베이징(北京)에 머물고 있었다. 23일 원 총리 집무실에서 있었던 대화 몇 토막.

원 총리:“정상회담 내내 머리가 아팠습니다. 싱가포르 정부의 혁신 내용을 직접 보고 나니 이러다 홍콩이 큰일 나겠다 싶어서요.”

창 장관:“이미 특별 팀을 만들어 싱가포르를 제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원:“홍콩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압니다. 그래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창:“말씀해 주십시오.”

원:“네 가지입니다. 시스템과 과학기술 방면에서 창의와 혁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지식교육,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우수 인재 확보, 환경을 중시하는 미래형 기업환경 조성입니다.”

창:“동의합니다. 홍콩 경쟁력 강화 방안을 대폭 보강하겠습니다.”

원:“도울 게 있으면 건의하세요.”

같은 날 창 장관은 홍콩과 마카오를 담당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점심을 같이했다. 창 장관이 총리와 나눴던 홍콩 경쟁력 강화 방안을 거론했다.

시 위원:“국민 화합과 정치·사회 안정은 경쟁력의 근간이지요. 홍콩의 안정을 위해 정부는 필요한 모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홍콩의 자율성은 변함없이 보장됩니다. 엊그제 리콴유(李光耀) 전(前)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 양국 협력을 요청했어요. 물론 홍콩과의 상호 윈윈 효과가 날 수 있는 협력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창 장관:“조만간 홍콩을 방문해 주시면 종합보고를 드리고 고견을 듣겠습니다.”

시:“가능한 한 빨리 방문하겠습니다.”

연이어 창 장관은 양제츠 외교부장을 찾았다.

양 부장:“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창 장관:“컨벤션 유치가 관건입니다. 투자 유치와 관광으로 이어지는 부가가치가 엄청난 산업입니다. 해외 전시회 유치를 위해 외교적 차원의 접근을 해 주시면 어떨지요.”

양:“곧바로 해외공관에 지시하겠습니다.”

꼼꼼한 원 총리 성격으로 미뤄 창 장관과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구체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을 것이다.

중국 지도자가 한국 지도자보다 낫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중국 지도자들은 해외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대처하는지 좀 알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지도자들도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반성할 게 있으면 좀 했으면 해서다. 그래야 강대국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신세도 벗어나고 열강에 당하기만 했던 치욕의 역사도 끊을 것 아닌가.

최형규 홍콩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