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버리려다 외팔 ‘25년 272회 헌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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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없어 수술을 못하는 환자 가족의 아픔을 잘 압니다. 이들을 돕기위해 헌혈을 시작했었요.”

왼쪽 팔이 없는 장애인 서정석(51·청주시 사창동·사진) 씨가 25년 동안 272회의 헌혈을 해 환자 가족 등 주위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가 헌혈을 하게 된 사연은 각별하다. 서씨는 스물 한 살 때인 77년 집안이 가난해 삶이 힘들어 방황하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열차에 뛰어들었다.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서씨는 수 차례의 수술 끝에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한 쪽 팔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서씨는 “팔을 잃은 바로 그 때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혈액 부족으로 여러 번 수술을 연기해야 했던 그는 아픈 사람의 절박한 심정을 알게 됐고 피를 나눔으로써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여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78년 퇴원한 뒤 82년부터 헌혈을 시작했다. 당시 1년에 5~6차례 헌혈을 한 서씨는 10여 년 전인 97년부터는 2주일에 한 번씩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청주시 사창동에 있는 헌혈의 집을 찾고 있다.

고물상에서 일하며 받는 푼돈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보조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서씨가 헌혈을 한다며 집을 나설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몸도 불편한데..”라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하루면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는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냐”며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준다는 생각에 잊지 않고 꼭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배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난으로 배우지 못한 한을 조금이라도 씻고자 2003년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생계 문제에 떼밀려 잠시 중단했으나 최근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서씨는 “인터넷을 하다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돼 시작했지만 전문용어가 많아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만 공부를 하는 그 자체가 기쁘다”고 말했다.

헌혈의 정년은 만 65세로 그 이후에는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그의 헌혈 목표는 500회다.

서씨는 “25년 동안 쉬엄쉬엄 해서 270번을 했으니 지금처럼만 꾸준히 헌혈하면 정년이 되기 전에 500번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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