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TK "누굴 찍나" 민심 이반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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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ㆍ전라(호남)와 대구ㆍ경북(TK)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두 곳은 지금껏 여당과 야당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한 곳으로 그 충성도가 컸다. 호남은 DJ(김대중)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몰표를 안겨줘 진보 정권을 만들어냈고 TK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한나라당의 오랜 뿌리였다. 그러나 최근 여론 지지도에서 이런 양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나온 조인스 풍향계 조사 결과를 통해 호남과 대구ㆍ경북 지역의 민심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풍향계가 전국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지난주(52.4%)보다 3.5%P 하락한 48.9%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의 지지도를 지역별로 보면 예상외로 대구ㆍ경북(10.5%P), 대전ㆍ충청(12.6%P)에서 하락 폭이 컸다. TK에 근거지를 둔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도는 오르지 않았다. 광주ㆍ전라 지역이 오히려 1.2%P 상승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지난주(12.3%)에 비해 0.9%P 오른 13.2%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상승 견인차는 대구ㆍ경북(4.5%P), 대전ㆍ충청(4.8%P) 이었다. 반대로 광주ㆍ전라 지역은 5.5%P 하락했다. 정동영 후보의 고향은 전북이다.

물론 호남과 TK에서는 아직 범여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의 ‘추’가 각각 61%와 34.9%로 기울어져 있으나 지난번 대선에 비해선 정도 차이가 크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90%가 넘은 몰표를 받았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TK에서 80%에 육박하는 압승을 거뒀다. 범여권과 한나라당이 왜 10년 이상 텃밭이었던 곳에서 동력을 잃어갈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다야다(與多野多)’의 대선후보 구도를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ㆍ진보 모두 단독 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한나라당의 전통 지지기반인 TK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후보가 맞붙어 보수 색채의 농도에 따라 그 표가 갈린다. 여권 역시 마찬가지다. 호남에 지지기반을 둔 후보들의 단일화 속도가 더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권 통합을 주문했지만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ㆍ창조한국당의 합당은 이미 물 건너 갔다. 치열한 파이 싸움으로 인해 어느 후보 하나도 튀어오를 수 없는 구조다.

또 다른 이유는 지역주의 특성에 따른 후보 세(勢) 약화다. TK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묵언행보가 계속돼 지지율 반등 재미를 못보고 있다. TK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박심(朴心)에 따라 이명박ㆍ이회창 후보의 표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선거컨설팅업체 아폴론커뮤니케이션즈 이성진 대표는 “TK에서의 이명박 후보 여론은 호감도이지 지지도는 아니다. 박 전 대표의 충성도가 확실한 지역인 만큼 그가 움직여줘야 하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어 표가 점차 빠져나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TK 지원사격에 나서면 표는 다시 복원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남 상황에 대해선 ‘김대중 향수’를 거론했다. 호남의 경우 5ㆍ18 광주 민중항쟁을 포함, 민주화 운동의 세 결집력이 강했지만 현재는 호남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맥(脈)을 이을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정동영 후보가 적자지만 지지율이 3위로 내려앉고 ‘단일화하라’는 김 전 대통령의 주문을 해결하지 못하는 등 자체 경쟁력이 약해 호남 유권자들이 힘을 실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서강대 이현우(정치외교학) 교수는 “경제개발의 낙후ㆍ소외로 인해 지금까지 구축됐던 반 한나라당 정서가 엷어지는 반면 정 후보를 뽑아야 할 당위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호남의 근원은 민주당이었지만 그 정통성이 해체되고 신당ㆍ민주당 모두 공황상태라 딱히 밀어줄 당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강력한 카리스마 부재, 각 당의 고소ㆍ고발에 따른 네거티브 상황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편협한 지역적 사고 축소 등도 이유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3일간 대선의 마지막 뇌관이랄 수 있는 BBK 사건과 범여권 후보 단일화 여부에 따라 한나라당과 범여권에 대한 호남ㆍTK 민심이 반등하거나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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