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살아 있는 동안 후계자 선출" … 중국 "우리가 뽑겠다" 발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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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망명 중인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72)와 중국 정부가 후계자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일본을 방문 중인 달라이 라마가 21일 산케이(産經)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생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후계자를 선출할 수 있다"고 밝히자 중국 정부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22일 "이런 발언은 환생자를 라마 사후에 찾아내는 티베트 불교 전통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의 대변인인 텐젠 타클라는 "중국 공산당이 이젠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권위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외신들은 중국의 비난이 차기 달라이 라마 임명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산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20년 전부터 후계자 문제에 대해 생각해 왔다"며 "고승들이 차기 달라이 라마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거나 내가 직접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차기 달라이 라마는 중국 밖에서 환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티베트 불교는 달라이 라마가 입적(사망)한 뒤 다시 세속에 환생한 어린이를 차기 달라이 라마로 선택한다. 임명위원회가 여러 가지 시험과 계시를 통해 어떤 어린이가 진정한 환생자인지를 가려낸다. 1300년대부터 14대째인 현 달라이 라마까지 이런 방식을 고수해 왔다.

달라이 라마가 이 같은 전통을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후계자를 선출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중국 정부가 후계자 선출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9월 "모든 티베트 불교 지도부 선임은 중국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불법"이라는 내용의 시행령을 공표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계자를 임명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한 것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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