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영화"내책상위의 천사" 캐리 폭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빛이 산란되는 바다로 난 들창가,광목 치마를 입은 빨간 더벅머리 처녀가 등을 돌리고 앉아 독백한다.
『…아름다운 하늘색 이끼와 꽃들로 온통 뒤덮인/옛 궁전과 탑들이 파도의 반짝이는 햇빛 속에 떨고 있는 것을/잠 속에서 본푸른 지중해를 그의 여름 꿈에서 깨운 너!/너의 진로를 위해 대서양의 잔잔한 세력들은…』 지금 그녀는 시 속에서만 그려 보았던 세계를 마주보고 행복한 순간에 흠뻑 젖어 있다.이 모습은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며 상영중인 『내 책상 위의 천사』의 한 장면이다.
카메라가 있는 어두운 등뒤는 그녀가 걸어온 처연한 나날을 암시하고 그녀의 시선이 닿는 지중해의 쪽빛은 이해할 수 없었던 질곡의 나날들이 이제 아름다운 글귀로 승화되는 신비함을 상징한다. 이 영화는 고난을 딛고 저명한 작가가 된 자젯 프레임이라는 한 뉴질랜드 여류작가의 불편하고 가슴아팠던 삶을 추적하면서「상처입은 자만이 아름다운 영혼을 지닐 수 있다」는 격언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암시적이고 서정적인 장면이 인생의 관조라는 주제에 적절히 녹아들게 하는데도 놀라운 기량이 발휘돼 있다.
감수성이 뛰어난 죄로 주위의 강압에 의해 정신병 환자로 보낸8년의 세월이 등뒤의 어두운 공간을 채우고 있다.연이은 형제들의 죽음과 괜스레 예쁘게 보아주지 않는 주위사람들,그리고 조그만 외부 자극에도 금방 알몸을 드러내고 마는 환 경등.그녀는 스스로 안정과 휴식을 찾아보다 자살시도도 했었다.
가슴팍으로 시를 읊던 프레임은 일어서며 등을 돌린다.아픈 과거를 「진주」로 빚어내기 위한 타자기 앞에서 그녀는 잔잔한 파고를 듣는다.
함께 일어서는 관객들은 그때서야 수채화같은 장면에서 뛰쳐나올수 있다.그리고 또 한 사람의 프레임 캐리 폭스를 만나게 된다. 시사회때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 작품에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정신분열증으로 수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며 발랄한자넷 프레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다』며 『어떤 사람이 실제로 경험한 환경이나 처우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전한다.
올해 스물 세살로 시드니드라마학교 출신이지만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가 내면연기가 요구되는 역을 완벽히 소화하자 제인캠피온 감독은 일찌감치 그녀를 고정 캐스팅 멤버로 등재시켰다.
***제인 캠피온감독에 전격 발탁 『피아노』로 잘 알려진 뉴질랜드 출신 호주 국적의 제인 캠피온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은배우에게 달려있음을 알고 아역배우를 포함,세명의 프레임역 선정에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녀에게 만족스런 배우는 흔치 않았을게 뻔하다.고민 중인그녀 앞에 나타난 캐리 폭스는 그러니까 말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유망주였던 셈이다.
〈李揆和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