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3개월은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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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08면

서른한 살 동갑내기 ‘방랑 남편’ 조영준씨, ‘맹랑 아내’ 남자현씨 부부는 1년3개월 동안 온라인 여행기 ‘방랑부부의 명랑 세계 여행’을 싸이월드에 연재했다. 평범한 직장인 부부의 즐거운 일탈은 호기심과 부러움에 가득한 온라인 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433일 세계 여행기 연재한 ‘방랑부부’

“어렸을 때부터 세계 여행이 꿈이었는데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1년에 1인당 2500만원 정도면 된다는 거예요. 아내에게 말해봤는데 선뜻 ‘응’ 하기에 얼마나 기뻤던지.”

그러나 무심코 대답한 아내는 남편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번복하지도 못하고 직장 걱정, 전셋집 걱정 등으로 2주 동안 잠도 못 잤다고 한다.
“어떻게 말을 뒤집을까 끙끙대다가 결국 이 사람의 평생 꿈을 함께하기로 마음을 굳혔지요.”

날씨에 영향을 덜 받도록 5월부터 유럽을 돌고 겨울철엔 포근한 남미를 여행하는 일정을 짰다. “로또 맞았느냐” “돈부터 모으고 여행은 나중에 가야지” 우려하던 동료·친구들도 ‘살랑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우비·침낭 등 여행장비 200만원어치를 품앗이로 마련해줬다. 여행길에 오르던 지난해 5월 17일 비행기 안에서 온라인 연재를 즉석 결정했다. 일일이 안부 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편할 것 같아서였다.

조영준(오른쪽)·남자현씨 부부는 가는 곳 마다 키스 사진으로 추억을 남겼다. 2006년 7월 18일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스포츠댄스 동호회에서 만나 연애 5년, 결혼 생활 1년3개월 동안 싸움 한 번 안 해본 두 사람이었지만, 세계 여행 첫 3개월 동안은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남편은 16㎏, 아내는 11㎏의 짐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빡빡한 일정에 시달린 탓이다.
“모로코 시장 한복판에서 서로 소리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여행을 그만두려고까지 했었어요.”

일정을 줄이고 ‘사과데이’를 정해 홀수 날은 남편이, 짝수 날은 아내가 무조건 사과하기로 정했다. 전쟁 같던 3개월 이후론 지금까지 싸운 적이 없다.

지난해 7월 터키 현지 학생에게 신세 진 사연을 담은 ‘터키 대학생 자취방 습격사건’편을 올린 뒤부터 독자가 폭증했다. 처음엔 사진 저장용으로 노트북을 들고 갔었는데, 여행기 작성용이 돼버렸다. 볼리비아에서 여행하던 한국 여대생 팬이 “방랑부부 아니세요?” 하고 식당에서 말을 걸고,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독자 최윤진(30)씨를 만난 것도 즐거운 추억이다.

지난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첫아이 ‘방맹이’가 덜컥 들어섰다.
“테스트기만 멍하니 들여다봤어요. 당장 한국에 들어가야 되나 싶었죠.”

하지만 곧장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가 3주 동안 트럭 투어를 감행했다. 아내는 입덧이 심해 하루에 오이 한 개, 토마토 한 개로 버텼다. 트럭 투어의 종착점이었던 요하네스버그에서 왕복 택시비 7만원을 내고 한식당을 찾아가 3주간의 허기를 달랜 것이 유일한 ‘임신 호강’이란다.

인도·백두산 등의 여행지는 포기하고 필리핀에 머무르면서 귀국하는 날 새벽까지 남은 여행기를 탈고했다. 마지막 여행기는 가는 곳마다 함께 찍었던 입맞춤 사진으로 채웠다. ‘세상을 만나러 가서(kiss the world), 바로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세상 속에서 잘 알게 됐다(kiss in the world)’는 말과 함께. 네티즌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항공료 930만원을 포함해 둘이 합쳐서 4300만원을 썼어요. 통장에 180만원이 남았더라고요.”

7월 23일, 부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예전 상사가 차린 회사에 취직했다. 건강보험증이 생기자 임신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산부인과부터 찾았다. 하지만 여행의 추억은 곳곳에 남아 있다. 비록 양복 차림이지만, 남편은 여행 기간 내내 기른 머리를 가지런히 묶었다. 셔츠 속엔 페루에서 만난 세종기지 대원들이 선물한 바다사자 이빨 목걸이가 숨어 있다. 아르헨티나의 밤이 선물한 ‘방맹이’의 출산 예정일은 4주 남았다. 여행 중에 미처 못다 쓴 이야기도 연재할 것이다.

‘방맹이’가 태어나면 부부는 다시 길을 나설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함께 또 떠나고 싶어요.”(방랑)
“이제부턴 ‘오지 여행’만 할 거예요. 오성급 호텔 패키지 여행!”(맹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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