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적 내재 접근’과 北核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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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27면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의 진실 게임과 삼성 비자금 문제로 매일 들끓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모든 국민이 이성을 되찾게 되면 우리에게 곧 닥쳐 올 시급한 문제가 바로 북한 핵 문제의 완벽한 종결이다. 북한 핵 문제는 현재 예상 밖으로 빨리 진전하고 있어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핵의 불능화 단계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협상이 북핵 폐기라는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도록 미래의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미래의 걸림돌은 여러 형태와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일단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장애물에 대해 미리 경계를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미래에 쌓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마도 우리가 북한에 대해 '남한적 내재적 접근'을 할 때 생겨날 것이다. 북한에 대한 남한적 내재적 접근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과 그 내용이 다르다.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북한을 북한 내부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남한적 내재적 접근은 남한 내부의 정치적 논리에 몰입하여 북한을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내재적 접근을 하게 되면 북한에 대해 상당한 관용의 시각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밖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고 용납할 수 없는 그 사회가 안에서 보면 이해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적 내재적 접근은 북한 및 친북 세력과의 대결구도라는 남한의 정치논리 속에서 북한을 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관용이 들어설 틈이 거의 없고,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 적화 야욕을 가진 군사적 강국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남한적 내재적 접근은 불행하게도 국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북한을 읽어내지 못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냉전의 종식, 세계화, 남한과의 급격한 국력차 등 북한 외부 환경의 엄청난 변화가 북한 내부의 작동원리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논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남한적 내재적 접근 속에서는 북한 외부 환경의 변화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정책 구상이 가능하지 않게 되고, 해결책은 오로지 압박을 통한 북한의 붕괴밖에 남지 않게 된다. 남북한 국력의 차이, 그리고 북·미 간 국력의 차이가 아무리 나도 북한은 여전히 남한을 적화시킬 의지와 능력을 갖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남한적 내재적 접근은 역설적으로 북한을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국가로 가정하게 된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을 속속들이 읽고 있으며 거기에 맞춰 정교한 전략을 짜고 수행한다는 것이다. 언제 붕괴될지도 모르는 북한이 초강대국인 미국보다 의사 결정과 전략 수행에 훨씬 뛰어나다는 결론은 남한적 내재적 접근이 아니면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역설적으로 강하고 뛰어난 북한은 초강대국이 밖에서 무엇을 해도, 어떤 유인을 제공해도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결론이 내려지면 협상과 포용정책은 폐기하게 되고 강한 압박정책만 남게 되는데, 여기서 남북한은 상호 갈등의 악순환 고리로 들어갈 장애물을 쌓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담당할 사람들은 남한적 내재적 접근보다는 맥락적 사고(contextual thinking)를 할 것을 권고한다. 북한을 국제 환경이라는 보다 큰 맥락 속에 존재하는 국가로 보고 그러한 맥락의 변화가 북한을 어떻게 구속하고 변화시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국제적 맥락의 변화와 국제적 힘의 균형의 변화에도 북한이 끄떡없이 그대로라면 북한은 그야말로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초강대국, 아니 제국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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