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형제』 내고 한국과 한층 가까워진 중국 작가 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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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03면

사진 제공=휴머니스트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즐거움은 있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아무리 즐겁다 해도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날로 부유해지는 삶 속에서 희망을 막는 장애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시대의 아픔 능청스레 푸는 입담꾼

힘 있고 경쾌한 목소리가 스크린을 통해 울려 나왔다. 짧은 머리에 깊은 눈매를 가진 남자는 시종 재치 있는 입담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21일 오후 서울 홍대 근처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열린 ‘퍼슨웹 북포럼- 위화(余華)와의 대화’. 베이징과 실시간으로 잇는 컴퓨터 화상대화로 한국 독자들이 중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와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최근 서점가에서 심상치 않게 일고 있는 중류(中流) 물결 속에서 위화는 단연 돋보인다. 1999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대표작『허삼관 매혈기』가 8만 부 가까이 팔린 것을 비롯, 장이머우 감독 영화 ‘인생’의 원작이기도 한『인생』이 2만5000부 나갔다.

『가랑비 속의 외침』『내게는 이름이 없다』『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이상 푸른숲 펴냄) 등 장·단편이 6종 번역돼 총 12만 부가량 나갔다. 같은 3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쑤퉁(蘇童)·모옌(莫言)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이렇기에 신작『형제』(휴머니스트 펴냄)의 경우, 2002년 집필 단계에서 판권이 계약되기도 했다.

『형제』는 60년대 문화대혁명의 격랑 속에 유년기를 보낸 송강·이광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민초의 굴곡진 삶과 중국 현대화의 명암을 속도감 있게 그린 장편이다. 중국에선 지난해 2권으로 완간된 이래 200만 부가 팔렸고, 한국에서도 지난 7월 3권으로 번역돼 현재까지 3만 부 이상 팔렸다.

재혼 가정에서 ‘형제’로 묶인 두 사내아이가 시대적 혼란 속에 부모를 차례로 여의는 전반부는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감독·1997)를 보는 듯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진다. 성격이 판이한 둘이 가파르게 전개되는 중국식 자본주의에 어떻게 영합하고 좌절하는가를 보여주는 후반부는 13억 중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듯 입체적이고 신랄하다.

이날 화상대화에서 작가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그리고자 했다”며 “한국도 80년대 떠들썩한 변혁에 앞장섰던 이들이 지금은 돈벌이에 정신 없는 세태가 중국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중 간의 이런 겹침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작품 후반부엔 한국산 드라마·제품들에 매혹되는 인물의 에피소드까지 등장한다. (작가는 소설가 고 이문구, 가수 전인권, 시인 김정환 등 한국 문화계 인사들과 꾸준한 교류로 국내 상황에 밝은 편이다.)

스스로 “언어를 절약한다”고 소개한 대로 그의 작품엔 현란한 수사가 없다. 15만 자(중국어 기준)로 쓰인 『허삼관 매혈기』에 사용된 단어는 불과 386개다. 명쾌하고 쉬운 언어는 그러나 힘이 있다. 인물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해서다.

연극 ‘허삼관 매혈기’를 각색한 극작가 배삼식씨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모순을 가감 없이 그린 점이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타자(他者)와의 관계 속에서 형상화되는 인물의 역동성을 칭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인간성의 구현-21세기 한국 독자들이 빠져드는 ‘위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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