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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향기 흔들리는 안동의 가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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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23면

1. .해마다 11월이면 금빛 가을색의 절정을 이루는 늦가을 국화밭. 안동 봉정사 자락의 국화밭은 풍경이 빚어내는 색의 향연도 물론이거니와 나라 안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는 안동 국화차가 생산되는 곳이다.

국화로 맺은 향긋한 인연
한껏 제 색깔을 드러낸 깊은 가을 풍경들 사이로 눈길을 끄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만난다. 국화 꽃물 곱게 들인 순한 우리 옷의 멋스러움에 눈이 먼저 머문다. 국화차를 즐기는 안동의 지인들이 휴일을 맞아 안동 군자리의 아름다운 정자 탁청정 앞뜰에서 작은 다회(茶會)를 열었다. 이날의 팽주(烹主)는 조소순(51)씨. 안동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낯익은 국화차 브랜드 ‘금국 국화차’ 박문영(54) 대표의 아내다. 국화를 심고 거두어 찻잎을 만드는 일 외에는 관심 없는 외곬의 농사꾼인 남편과 달리, 국화를 이용해 새로운 음식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재미에 푹 빠진 그녀다.

2.‘금국 국화차’ 박문영 대표 부부.

이번 다회는 저무는 가을을 맞아 국화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자리이지만, 국화 꽃잎을 얹은 화전과 국화 백설기, 싱그러운 국화꽃으로 버무린 제철 샐러드로 푸짐하고 화려한 국화꽃 상차림이 더해졌다.
이들에게는 이 향긋한 상차림이 처음은 아니다. 국화 사랑이 유별난 안동에서는 잘 마련한 식용 국화로 전을 부치고 떡을 빚고 국화 김치를 담가 상에 올리기도 한다. 향긋한 가을 소국이 밥상 위 먹을거리로 새롭게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안동포에 국화물을 곱게 들여 찻상을 꾸미고 국화 꽃잎으로 맛과 향을 낸 귀한 음식이 더해지면 더 이상의 호사가 없지요. 모처럼 국화 꽃잎으로 염색한 옷까지 갖춰 입으니, 이보다 멋진 가을 소풍이 있을까요?”
함께한 지인들의 국화 예찬이다. 자연에서 얻고 입고 먹는 소중한 일상의 한 풍경이 오래전 고가의 너른 터에서 안성맞춤을 이뤘다.

3. 국화꽃을 얹어 쪄낸 백설기. 국화차로 쓰이는 가볍고 부드러운 소국을 잘 손질해 맵쌀 가루에 섞어 쪄낸다.

나라 안 제일의 맛, 안동 국화차
“국화차는 안동이 제일입니다. 이곳 봉정사 자락의 국화밭만큼 장관을 이루며 대량으로 생산되는 곳은 드물지요. 봉정사의 돈수 스님께서 전수해주신 국화차의 전통이 이곳에 뿌리를 내려 국화차는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4. 국화 꽃잎을 곱게 얹어 부친 화전. 봄철 진달래 화전과 달리 가을철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계절식이다. 5. ‘성품을 기르는 가장 좋은 차’로 전해 오는 국화차. 두세 번 무서리를 맞아 맛과 향을 더한 국화 꽃잎을 일일이 손을 따서 여러 가지 한약재를 달인 물에 데쳐낸 후 일정한 건조기간을 거쳐야 비로소 찻잎이 완성된다. 혈액순환을 돕고 장에 좋다고 알려졌다.

금국 국화차 박문영 대표의 말처럼 국화에 대한 안동 사람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물론 전북 고창에도 대규모의 국화밭이 있고 매년 11월이면 ‘국화 옆에서’의 시인 서정주 선생을 기리는 미당 문학제와 겸해 국화꽃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국화꽃 재배와 보급에서는 안동이 종가라는 자부심이다.

봉정사 서귀암의 돈수 스님은 이곳 안동에 국화차를 보급한 주인공이다. 국화차를 생산하는 곳이 몇 곳 있지만 모두 스님으로부터 국화차의 깊은 맛과 가치를 전해 받아 뜻을 이어가고 있으니 안동의 국화차는 한 정신과 맛을 지녔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국화 중 식용을 위한 찻잎으로 쓰이는 것은 소국이다. 두세 번 무서리를 맞은 것이라야 그 맛과 향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어, 매년 봄 새 국화 모종을 심은 후 무서리 내리는 10월 말과 11월 초가 되어야 꽃잎을 따기 시작한다.

일일이 손으로 딴 국화는 여러 가지 한약재를 달인 물에 데쳐 일정한 건조기간을 거쳐야 꽃이 지닌 독성을 중화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본래 찬 국화의 성질이 중화되는 효과 또한 얻을 수 있다.

이곳 국화차는 철저히 유기농 재배한다.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벌레도 잡아주지 않고 물도 따로 안 준다. 일 년에 네 번 풀을 뽑아주는 것이 고작이다. 자연에 기대어 자연의 모습대로 건강하고 강하게 자라도록 돌볼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야말로 방치 농사이지요. 작물은 자주 손보면 약해집니다. 자연 그 상태가 최고로 좋은 것이죠. 사람이나 땅이나 다 같습니다. 자연 그대로 치유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만큼 최상의 방법은 없습니다.”

이곳 모든 농사꾼들의 마음을 담아낸 국화차이니 어찌 건강하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다. “국화차는 성품을 기르는 가장 좋은 차”로 전해 온다. 말린 국화를 끓여 그 물에 목욕하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국화물에 머리를 감으면 탈모가 예방되고 만성 두통이 치료된다, 국화 베개가 두통을 치료한다, 혈액순환을 돕고 장이 좋아진다 등 이 모두가 전해 오는 국화의 효용이다. 차의 맛과 멋에 덤으로 얻는다고 하기에는 그 몫이 너무 크다.

봉정사 주변의 깊어가는 가을
안동시 노하동 34번 국도에서 봉정사까지 이어진 서후면 태장리 일대는 늦가을 국화차 재배용 소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곳에 조성된 차 국화 재배단지는 예로부터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화원으로 불릴 정도로 꽃이 많은 지역이다. 땅의 물이 잘 빠져야 하는 국화의 재배조건에 맞게 배수가 잘 되는 지질인 데다, 꽃은 먼저 피고 서리는 늦게 내려 국화차의 깊은 맛과 향을 간직하기 좋은 기후 조건을 갖췄다.

봉정사 주차장 주변과 서귀암을 중심으로 펼쳐진 국화밭은 안동을 대표하는 국화차 브랜드 ‘가을신선’의 국화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자리 잡은 이 고즈넉한 절집은 깊은 가을이면 황금빛 국화밭으로 인해 그 풍경이 최고조에 달한다.

봉정사 못 미쳐 국도변 태장2리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펼쳐진 ‘금국 국화차’의 국화밭에서도 밭 입구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시음회가 한창이다. 도로변에서부터 인파가 줄지어 선 아기자기한 국화밭에는 가을 풍경을 담는 방문객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곳에서는 또한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꾼 앙증맞은 국화밭이 저만치서 노란 가을빛을 내뿜는다.
여기저기 곳곳에 국화가 지천이니 안동 봉정사 자락은 사방이 국화밭 종가로서 그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지고 있다.

수확철이면 국화밭 입구는 시음회장으로 변한다. 나들이 길에 처음 만난 향긋한 차의 맛에 놀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관광명소로 이름이 나면서 구경 온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차 생활이 보편화된 중국인들도 이곳 국화차를 반겨 구입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맛과 멋 그리고 그 효능으로 국화차가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 풍경들이다.
이처럼 매년 10월 말부터 시작해 11월이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화꽃 대궐을 이루며 일 년 중 가장 눈부신 가을 풍경이 천등산 기슭 고즈넉한 사찰 봉정사 가는 길에 펼쳐진다.

그 풍경은 또한 옛날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국화 꽃잎을 따 술과 차와 떡을 빚고, 꽃과 잎을 말려 베갯속을 마련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되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함과 건강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찾아가는 길

안동의 국화 다원(茶園)은 금국 국화차(www.gughwa.com), 가을신선(www.gaulsinsun.com) 등이 대표적이다.
국화차는 시음회장이나 차 전문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다. 봉정사 입구의 전통찻집 만휴(www.manhue.com)에서도 국화차를 맛보거나 구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봉정사 지조암 귀일 스님의 기와그림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좋다. 무엇보다 국화밭으로 가는 길은 유서 깊은 사찰 봉정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반촌 하회마을, 조선 유교정신이 깃든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으로 이어져 역사와 문화의 고장 안동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가까운 농암종택이나 광산 김씨 예안파의 집성촌인 군자마을(http://cafe.naver.com/gunja1)에서 하룻밤 묵어가도 좋다.


글을 쓴 손태경씨는 우리 사회 곳곳의 다양한 풍경과 사람살이를 찾아 글로 쓰는 자유기고가며, 사진을 찍은 이동춘씨는 한국의 의식주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진가로 전통 차 문화를 다룬 책자 『차와 더불어 삶』(디자인하우스 펴냄) 등의 사진을 맡았던 ‘포토스퀘어’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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