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CEO도 솔깃한 사람 … 사람 … 사람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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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 지음,
21세기북스,
360쪽, 1만5000원

요즘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는 사람이 많다. 정말 인문학은 죽었는가? 아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다. 인문학에 창의성이 충만하고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향기와 욕망이 분출되기에 오히려 인문학의 심장은 펄떡펄떡 뛰고 있다. 특히 성공한 경영자나 정치인은 인문학의 이 같은 특징을 제대로 활용해 큰 재미를 봤다. 이 책은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면서 인문학적 깊이가 세계 혹은 기업 경영의 승패를 가른다고 적시하고 있다. 삶의 끈끈하고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가 녹아난 것이 인문학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은이는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면서 2년여 전부터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고경영자(CEO) 조찬 특강을 펼치고 있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입담 좋은 명강사로 유명하다. 이 책은 그의 강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마치 말하듯 구성돼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편하고 재미있게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책에는 강희제·옹정제·건륭제 같은 위대한 중국 황제들은 물론, 마샬·맥아더·아이젠하워·패튼 등 미국의 명장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드라마틱한 삶에는 인문학의 기본인 창의성과 인간의 오감(五感)이 녹아 있다.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이자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도 원래는 도덕 철학자이지 않았느냐는 반문도 들어있다.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코트 간 치열한 남극탐험 경쟁을 통해 이긴 자와 실패한 자의 차이를 인문학적 사고의 차이로 분석하기도 한다. 짐승 털가죽 방한복을 입은 현지화 전략의 유연한 사고방식(아문센)이 세련된 유럽식 방한복을 입은 격식 제일주의(스콧)를 눌렀다는….

기업이 생존하려면, 제품이 잘 나가려면, 이야기를 팔아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예컨대 몇 년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탔던 구형 체어맨도 ‘여왕의 차’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져 이후 국내에서 짭짤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례를 든다.

결국 창의적인 인물들은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기보다는 강렬한 흥미와 호기심의 소유자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동이 아니었던 아인슈타인, 중년이 되기까지도 정치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처칠, 미래에 큰 인물이 될 거라고 평가 받지 못했던 톨스토이·카프카·프로스트. 그러나 이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모험심,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열정으로 창의성을 분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기본 바탕을 인문학적 소양에서 찾고 있다. 올 5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가 무하마드 알리에게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도 결코 패배하지 않는 혼(魂)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지은이의 ‘인문경영’ 제1권이다. 2,3권이 내년 초에 나온다니, 그의 강의를 직접 듣지 못하더라도 책을 통해 그의 구수한 ‘살아있는 인문학’ 입담을 계속 접할 수 있겠다.

글=정선구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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