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동성동본 금혼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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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 법원쪽에서 동성동본(同姓同本)남녀의 혼인을 막는 민법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한다.사실 그러한 주장은 1950년대 중반 민법을 제정하는 작업이 진행될 때 이미 나왔었고,그 후에도 끊이지 않고 줄기차게 행해졌 던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도 그러한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여러번에 걸쳐 제출된 바 있다.그러나 1989년 말에 민법중 친족편.상속편(통상「가족법」이라고 불린다)의 근본적인 개정이 있을 때까지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관한한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
이 문제에 대한 찬반(찬反)의 입장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있다.그러나 그 사이 이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사정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위헌성(違憲性)의 문제다.어떠한 법률이 나라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 그 법률의 효력을 소멸시키거나 제한하는 장치,말하자면 법제(法制)의 자기정화장치(自己淨化裝置)를 위헌법률심사제도라고 한다.종전에는 이 제도가 명목상 존재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실제상으론 거의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1987년의 개헌으로 헌법재판소제도를 채택하고 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비록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에 대해선 소극적 또는 보신적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전부터위헌의 의혹을 받아왔던 법률 조항에 대하여 과감 하게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 효력을 상실시킨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만일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헌법위반 여부의 심판대에 세운다면어떻게 될 것인가.아마도 합헌(合憲)이라는 판정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무엇보다도 헌법 제10조는「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행복을 추구할 권리를가진다」고 정하고 있다.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결합하여 남의 축복을 받고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부공동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극히 중요한 사항 에 속한다.사람의 이러한,오히려 자연스러운 권리를 국가가 법률로 제한하려면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녀가 동성동본이라는 사실이 그와 같이 중요한 권리를제한할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까.도대체 동성동본끼리의 혼인은 왜 금지되어야 할까.어떤 사람은 동성동본끼리의 혼인은 우생학적으로 폐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민법은 그 점을 고려해 8촌 이내의 혈족인 사람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은 그것이 우리나라의「전통」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또 그러한「고유한 미풍양속」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첫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관습이나 풍속의 영역과법의 영역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설에 고향을 찾고성묘를 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라고 해 그렇게 하라고 법률로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동성동본끼리 혼인 을 회피하는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이라면 그 추이도 사람들의 관념과 행동 양식의 흐름에 맡겨두면 족할 것이다.
둘째로 단지「전통」이 그렇다거나「고유한 미풍양속」이라는 이유만으로는 그것을 법률로 유지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하며,그것이과연 오늘날의 관점에서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실질적인 근거를 가지는 지 여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19세기 후반의 개국(開國)이래로 수많은 언필칭「전통」이나「고유한 미풍양속」이 개인의 창의와 독립을 중시하는 민주적질서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해 악습으로 지탄받아 사라졌거나 오늘날도 이를 없애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또 하나의 사정 변화는 동성동본끼리의 혼인은 이미 법률로서 사후적으로 추인되었다는 점이다.1978년과 1988년 두차례에 걸쳐 1년 동안 효력을 가지는 특례법을 만들어 동성동본인 남녀가 사실상 혼인생활을 하고 있으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리하여 약 1만7천쌍이「구제」되었다.
***관습과 法은 별개영역 많은 사람이 그동안 고통을 당하고있었다는 셈이다.그리고 도대체 한편으로 안된다고 금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기왕 했으면 괜찮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그 금지가 근거 박약함을 웅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는 쓸데없이「국론의 분열」따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수많은사람이 당하는 고통의 뿌리를 뽑아 없애야 할 것이다.
〈서울大교수.民法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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