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미회담 타결후 북한의 진로-對南적대관계 계속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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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한 이후북한과 미국간에 진행돼온 北-美핵협상이 타결됨으로써 북한은 일대 역사적 전기를 맞게됐다.北-美협상의 타결은 북한체제의 향후변화에 김일성(金日成)의 사망보다 더 직접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 와중에서 북한 최대 정책목표는 사회주의권 개혁.개방과 체제붕괴의 바람이 북한내부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 체제를 고수하는 것이었다.북한의 그러한 위기적 상황에서 핵문제는 북한에 두가지 기능적 역할을 했 다.
첫째,북한은 미국.국제원자력기구(IAEA).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사찰 압력을 외부로부터의 체제전복 위협으로 선전하고전쟁분위기를 고조시켜 내부 체제통합의 명분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북한은 핵문제를 미국과의 문제로 규정하여 미국과 대화채널을 얻어내고 체제인정.경수로지원.北-美관계발전등의 합의를 얻음으로써 체제위기국면을 극복한 이후의 국면전환을 위한 환경조성을 준비하였다는 점이다.
이제 北-美회담이 타결되고 대외적 정책전환을 위한 정지작업이이루어진 만큼 북한은 대외적 정책면에서 어느정도의 변화가 예상된다.무엇보다도 北-美간 적대관계가 크게 완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에 합의하게 된 것은 단지NPT탈퇴를 무기로 한 북한의 억지요구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북한을 카드화하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카드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만큼 北-美관계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북 한은 또한 과거 중국과 소련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함으로써 실리를 추구했던 방식을 이제부터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미협상 타결은 김정일(金正日)의 권력승계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김일성이 사망한지 1백일이 지난 지금까지 김정일이 공식적인 승계를 유보하고 있는 것은 북-미회담이 타결되지 않고는 김정일 시대를 선언할 수 있는 대내외적 여 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미국과 서방세계로부터 테러국가로 지목된 상황에서 김정일의 정책선택 폭이 제한되기때문에 김정일로서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체제인정과 정권인정을동시에 추구했던 것이다.
북한이 이제 경제문제를 최우선적인 정책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경수로의 성공적 건설은 긴요하다.따라서 특별사찰 문제는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경수로 건설공사가 중요한 레버리지가 된 이상 핵사찰을 지연시킴으로써 경수로 건설을 지연시키 는 것은 북한에 이로울 것이 전혀 없다.에너지문제의 해결이 지연되는 만큼북한의 경제회복도 지연된다.
내년 4월이후 NPT조약이 경신될 경우 북한은 미국에 대해 행사할 큰 레버리지가 없어진다.이제 북한 핵문제는 북한이 주도하는 국면에서 미국과 한국이 주도하는 국면으로 이행된다고 보는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대남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핵카드의 효력이 소진되고 있는 만큼 북한은 평화협정체결.
미군철수와 같은 새로운 카드를 제기해 남한을 볼모로 해 미국을움직이는 전략을 계속할 것이다.또한 지금까지 대미.대일.대남비방으로 체제통합을 유지해온 만큼 이제 남은 비방의 대상은 남한이다. 북한이 새로운 체제유지의 메커니즘을 개발할 때까지는 남한에 대한 비난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현재로선 북한이 대남 적대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미국과의 합의와 남한의 대화공세 때문에 대화에 응한다 하더라도 형식적인 대응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경협을 얻기 위해 북한이 남한에 적극적인 손짓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정부가 이미 핵문제만 타결되면 경협의 빗장을 풀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남북경협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북한은 남한 정부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피하면서 민간기업과 기업.단체에 대 한 개별 접촉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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