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교육부 실험 희생양된 89년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평준화 수능 등급제'로 수험생과 학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기사(본지 11월 21일자 1면)가 나간 뒤 학부모들의 e-메일이 쏟아졌다.

한 수험생의 어머니는 "정보력 떨어지는 부모여서 아들에게 미안했다. 이제라도 괜찮은 학원에 보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한 학부모는 "올해 고3은 '저주받은 89년생'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89년에 애를 낳은 게 죄 같았다"며 학원 이름을 물었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도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 아이와 함께 논술 학원을 찾고 있었다. 정보가 부족해 막막하다. 기사에 나온 대치동 '그 학원'이 어디냐"(아이디 asis)고 묻는 내용도 있었다.

e-메일을 보낸 학부모 중 상당수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했다. 이번에 수능을 치른 고 3학생의 부모들은 다른 해와 다른 고통을 겪었다. 자녀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입제도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2005년 학원가에는 내신 전문학원이라는 현수막이 줄줄이 걸렸다. 교육부가 내신 성적을 수우미양가 대신 상대평가하는 내신 등급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고2였던 2006년에는 대학들이 그들이 대입 시험을 보는 2008학년도부터 통합교과형 논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지금의 고3 학생들은 3년 내내 수능.내신.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지냈던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 곁에서 까맣게 속을 태웠을 것이다. '부모 정보력에 따라 아이가 가는 대학이 달라진다'는 말을 가슴에 묻고 살며 3년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이 고통 받는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요즈음 수험생을 둔 웬만한 부모들은 돈을 '펑펑' 쓰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수백만 원하는 논술 학원비나 시간당 50만~60만원짜리 상담료를 걱정할 겨를이 없다.

한 학원 강사조차 "학원 업계는 최대 호황을 맞았지만 학부모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불확실성만 키운 '평준화 수능 등급제'는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도입 취지와는 완전히 어긋난 결과를 불러왔다.

수험생과 학부모를 고통으로 내몬 것은 내신강화와 수능등급제와 같은 노무현 정부의 무모한 교육 실험이다. 대선을 한 달도 채 안 남긴 지금, 모든 대선 주자는 대입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새 대통령이 '89년생의 저주'를 풀어주길 기대해본다.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