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야학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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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야학사는 저항의 역사였다. 일제 시대에는 애국 계몽.민족 해방 운동, 해방 이후에는 봉건 경제 제도에 대항하는 운동의 요람이었다.

6.25 전쟁 이후에 생긴 천막학교부터는 성격이 좀 달라졌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맹 퇴치에 열중한 것. 1970년대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빈민.노동자 등을 대학생 선생님들이 천막 등지에서 가르치는 검정고시 야학이 주류를 이뤘다.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 10대 까까머리 청소년들이 야학에 모였다. 80년대에는 어린 노동자들이 야학으로 흘러들어오면서 검정고시 과목뿐 아니라 노동법.사회과학을 가르치는 '노동 야학'이 활기를 띤다.

29년째 야학 교사를 하고 있는 상록야학 최대천(57) 교감은 "학생들은 낮에는 구두닦이.신문팔이.선반공.봉제공 등으로 10~12시간씩 일하고 밤에는 향학열을 불태웠다"고 회상했다.

90년대에는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읍.면지역 단위까지 중학교 의무 교육이 시작되면서 야학의 청소년 비율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40대 이상이 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70, 80년대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청소년들이 어른이 된 지금 야학을 찾는 셈이다. 학생층이 변하면서 자연스레 노동 야학은 사라지고 검정고시 야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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