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놀라운 기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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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78년 워싱턴시에 있는 내무부와 시몬 볼리바르의 동상 사이 C가(街)의 어떤 관목덤불밑에 누워 있었다.6월의 토요일 오후 2시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햇빛 비친 잎새들의 빛나는 초록빛 과 짙은 푸른색 하늘 뿐이다.
노상강도 두 명이 그의 두개골과 턱에 골절상을 입히고,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를 그의 지갑으로부터 해방해 놓았다는 것이다.강도들 중의 하나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곧 그에게 총을 박을지도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런 비현실적인 순간 에도 초록색 잎새와 푸른 하늘이 보였으며 그의 영혼은 평화로 가득 차 올랐다. 강도들은 현금 75달러와 그의 딸들 사진 몇 장을 가지고무사히 도망쳤으나 그는 75달러의 현금과 딸들의 사진 몇 장을잃은 대신 관목덤불 밑에서의 놀라운 기쁨을 발견한 것이다.
비록 죽음에 직면해 놀라운 기쁨을 발견한 다이슨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얼마 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 한 무리의 중학생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나는 내 속에 기쁨이 가득 차 올랐던 것을 경험했다. 다이슨이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시 한 구절이 그 순간 내게도 떠오르고 있었다.『이것은 그대가 늙었을 때 새로 태어나는일이다.차갑게 느껴지던 그대의 피가 더워지는 것을 보는 것은.
』 사람의 시기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언제일까.아기,사춘기의 소녀,젊고 건강한 20대.인간의 어느 시기인들 아름답지 않은 시기가 있을까마는 나는 저녁 무렵에 귀가하는 한 무리의 중학생들을 보고 인간이 독특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기를 발견했다.
털갈이할 때의 닭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듯 이제 한참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그 소년들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날 저녁 무렵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는 우연히 사람에 대한 놀라운 기쁨을 발견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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