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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어주는 어복쟁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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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날씨도 쌀쌀한데, 따뜻한 국물 어때?”

“이런 날에는 즉석에서 보글보글 끓는 전골이 제일이죠. 해물전골로 갈까요, 곱창전골로 갈까요? 음, 쟁반은 어때요?”

아니나 다를까, 쟁반 소리에 선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우래옥·남포면옥·평래옥 외에도 몇몇 냉면집을 입에 올리며 서울 을지로를 휘돌았지만 그때마다 ‘거긴 비싸고, 그곳은 정신없고, 여긴 좀 그렇지?’ 등의 이유가 우리의 목덜미를 잡았다. 마침내 한 집에 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엔 내내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깔끔하고 따뜻한 국물이 몸을 녹여주기에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놋 쟁반에 소 젖가슴살인 유통과 양지머리 등을 잘라 넣고 계란·잣·배·파·버섯·야채로 살짝 덮은 다음 쇠고기 육수를 부어 자글자글 끓여 먹는 어복쟁반은 평안도 고유의 음식이다. 즉석에서 끓여 먹으니 전골이고, 따라서 어복쟁반은 평안도식 전골인 셈이다.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어복’이 무슨 뜻일까?”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확실한 것은 없어요. ‘물고기 魚’와 ‘배 腹’을 써서 어복이라고 부르게 됐다는데 그 이유는 알려진 게 없어요. 어복쟁반은 경우에 따라 ‘어복’ ‘우복’ ‘어북’ 등으로 달리 불리기도 하는데, 그중 ‘우복(牛腹)’이 변해서 ‘어복’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그럴듯한데. 쟁반에 소의 뱃가죽살, 다시 말해 소 젖가슴살인 유통이 없어서는 안 되니까. 살이 연하고 우유 맛도 살짝 감돌아서 입에서 녹아 내리는 듯한 느낌이 쟁반 먹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지.”

“저는 ‘쟁반’이라는 말도 재미있어요. 전골·신선로·구절판과 마찬가지로 쟁반도 먹을 수 없는 그릇을 음식이름으로 쓰고 있잖아요.”

“어복쟁반은 원래 ‘어복장국’이라고 불렸다고 하잖아. 언제부턴가 담는 그릇이 음식이름을 대체하게 된 거지. 아주 오래전부터 어복쟁반을 ‘쟁반’이라고 줄여 불러왔기 때문에 ‘여기 쟁반 하나요’라고 주문해야 제대로 대접받아.”

그러고 보니 장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어복쟁반의 육수는 맑은 장국이다. 주로 양지머리를 가마솥에 넣고 끓이니 맛은 진하면서 국물은 맑아 입이 개운하고 느끼하지 않다.

“전골이란 게 여럿이 둘러앉아 먹어야 제 맛이죠. 음식은 같이 즐겨야 더 맛있는 법인데 그런 점에서 쟁반이라는 이름은 딱 어울려요.”

“쟁반을 불에 올리지 않고 뜨거운 육수를 계속 갈아주던 예전에는 쟁반을 들고 돌려가면서 입을 대고 육수를 마셨다고 해.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이어준 거지. 그래서인지 어복쟁반은 평양의 상가에서 생겨나고 또 그들이 즐겼던 음식이라고 해. 평양 상인들이 흥정을 벌이면서 한 푼 두 푼 차이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면 긴장을 풀고 대화를 부드럽게 풀어나가기 위해 어복쟁반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고기와 야채를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계속 채워주는 육수에 소주 몇 잔을 기울이니 몸도 마음도 푸근해졌다. 어복쟁반의 마지막 코스로 육수에 메밀국수와 만두를 말아 먹으니 그 맛이 또 일품이다. 이래저래 욕심을 부린 터라 배는 부르고 몸은 나른해져서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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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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