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前대통령.박태준씨 착잡한 상봉 묵은 감정 풀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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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국에서 여러가지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10일 오전9시 박태준(朴泰俊)전포철회장의 모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두 사람은 악수하며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盧씨는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고 朴씨는 착잡한얼굴이었다.
이어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서 15분간 대화를 가졌으나 얘기는 겉돌기만 했다.盧씨는 『여러가지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보람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고 朴씨는 『어머님이 마음에 맺힌것이 많으셔서…』라고 대꾸했다.
盧씨와 朴씨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2년만이다.92년10월6일 盧씨가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고별연설을 하며 만난뒤 처음이다. 朴씨는 한창 3당합당이 준비되고 있던 90년1월5일 당시 대통령이던 盧씨의 강요하다시피하는 권유로 민정당대표위원을 맡으며 처음으로 본격 정치에 입문했다.
朴씨는 영입이 되기는 했으나 합당과정에서는 소외되었고 2주만인 90년1월21에 합당이 이뤄져 민정계를 대표하는 최고위원이되었지만 정국은 합당주역인 노태우.김영삼(金泳三)씨 위주로 운영되었다.
朴씨와 盧씨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착잡미묘하게 된 것은 92년1~5월까지 진행된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을 둘러싸고.
당시 朴씨는 어떻든 민정계가 유일 단일후보로 자신을 선택하면회피하지 않고 경선에 참여한다는 입장이었다.그러나 민정계의 세(勢)를 결집하는 과정에서 盧씨가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朴대표는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朴씨의 경선 참여에 처음에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던 盧씨가 막판에 가서 서동권(徐東權)당시 안기부장을 보내 경선포기를 종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민자당 후보는 결국 김영삼대통령으로 정해졌지만 朴씨는 盧씨의 권유로 최고위원직은 그대로 유지했다.
盧씨가『우리 둘이서 金후보를 도와줘야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기 때문이다.그러나 盧씨는 또한번 朴씨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대선을 얼마 앞둔 92년10월초 朴씨와는 아무런 사전 상의나통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민자당을 탈당해버리고 말 았다.
그 후 朴씨는 정치에 대해 허무와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그러한 감정의 상당부분은 盧씨에 기인하는 바 크다는 것이다.
그런 부담 때문에 盧씨가 빈소를 아침 일찍 찾았는지도 모른다.
이날 빈소주변에서 한 측근은『盧전대통령이 朴전회장에게 여러가지 빚이 있는 만큼 조문을 계기로 두 사람의 화해가 이뤄져야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朴전회장의 고초는 모두 盧전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원망하며 문상으로 맺힌 한이 풀어질 수 있을까 우려하는 쪽도 있었다.
〈金基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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