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진화할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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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08면

한국 에로영화의 역사는 1982년 안소영 주연의 ‘애마부인’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계에 허덕이던 충무로는 이때 에로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비디오시대가 열리면서 에로영화는 1차 전성시대를 맞았다. 소액투자로 다작을 할 수 있고 운만 좋으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영화 도박판이 열린 것이다.

모바일·IPTV 등 새 매체에 맞게 변신 모색

특히 95년 큰 젖가슴 하나만을 앞세운 진도희 주연의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너도나도 에로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가 욕구불만과 ‘19금(禁)’ 콘텐트 부재의 시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그렇다.

‘가위질’ 따라 흥망 거듭해온 에로영화
에로업계에는 ‘3년 주기설’이 진리처럼 통용된다. ‘3년 주기설’이란 3년마다 흥망이 반복된다는 이야기다. 에로영화의 흥망은 당국의 규제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가위질 기준에 따라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정부는 의례적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도구로 시의 적절하게 에로영화와 음란물을 이용해왔다.

한국이 속해 있다고 자랑스러워해 마지않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보자. 포르노의 제작·유통이 불법이거나 에로영화까지 규제하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영등위는 애초부터 모호한 기준으로 에로영화가 산업화될 수 있는 싹을 잘랐다. 똑같은 베드신과 음모노출 장면일지라도 35㎜ 영화에는 관대하고 에로영화에는 혹독했다.

비디오시대에 ‘3년 주기설’대로 흥행과 실패를 반복하던 에로영화는 90년대 후반 깜짝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과거 에로영화가 여배우의 젖가슴에만 집착해 있었던 반면 당시 등장한 에로 여배우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와 몸매로 팬들을 끌어 모았다. 한국에도 에로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지금은 연예계에 진출해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성은과 하유선은 각각 유리와 하소연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에로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때는 비디오시장이 사양화되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활황이던 시점이었다. 에로배우들은 에로비디오와 인터넷 성인영화관, 성인방송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마치 일본 AV업계가 포르노배우에서 방송계 스타로 떠오른 이이지마 아이(飯島愛)를 통해 단번에 시장을 확대했던 상황과 흡사했다. 에로업계가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사이버수사대 등의 복병을 만나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정부는 더 이상 ‘19금’ 콘텐트를 방치하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에로업계를 숨도 못 쉬게 규제했다. 국경 없는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해외 포르노물은 한국 에로영화를 경쟁력 없는 유치한 영상물로 전락시켰다.

수익 악화되자 여배우 ‘새 피’ 수혈 안 돼
에로업계의 생명력은 여배우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비디오와 인터넷이 접해 있던 당시 에로업계는 전에 없이 풍성한 여배우들의 등장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현직 간호조무사에서부터 유치원교사까지 옷을 벗고 동참했다. 심지어 명문대 출신의 여배우가 등장해 사회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반영화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고액의 출연료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구속과 벌금을 넘나드는 지속적인 규제 속에서 업자들은 하나 둘 손을 들었다. 수익성이 급속하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버틸 힘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 에로영화는 이른바 셀시장(판매)이 전무한 상태에서 렌털시장(대여)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2만 개에 육박하던 비디오대여점이 3500개로 줄어들면서 에로영화 시장 역시 사라졌다. 무한 복제, 무한 공유되는 인터넷만으로는 수익을 결코 맞출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을 넘기자마자 악몽과도 같은 장기불황에 빠져든 것이다.

현재 에로업계에서 활동하는 여배우는 주·조연급을 막론하고 20여 명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이들이 뒤섞여 있다. 새로운 여배우의 등장 없이 에로영화의 부활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비디오 시장을 잃은 에로영화계는 장편영화를 거의 포기했다. 60분에서 90분에 이르는 장편물로는 더 이상 승부수를 걸기 어려운 것이다. 여배우 2~3명, 남배우 2~3명의 조합으로 편당 1500만~2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였던 시대는 이제 전설이 돼버렸다. 최소 3일에서 일주일이 걸렸던 촬영기간 역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짧고 강하게’ 모바일 출구 찾는 에로물
에로업계는 첫 번째 탈출구를 모바일 시장에서 찾고 있다. 동영상이 구현되는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고 무선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면서다. 그 때문에 요즘 만들어지는 에로물은 영화라기보다는 동영상 콘텐트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할 듯싶다.

모바일시대에 맞춘 에로영화는 길어야 5분을 넘기지 않는 러닝타임 속에서 짧고 강렬한 스토리를 강조하는 형식이다. 에피소드를 엮은 옴니버스나 시리즈물이 자주 등장한다. 인터넷 성인영화관 ‘쇼타임’의 김창환 제작팀장은 “에로영화는 일회용 자위기구와 같은 것이다. 작품성도 겸비하면 좋겠지만 그보다 욕망 해소를 돕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면서 실용성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에로영화가 완전히 실종된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전통적인 에로영화는 많지는 않지만 몇몇 제작사에서 주기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용도는 과거와 전혀 다르다. 장편 에로영화 시장은 이제 케이블TV와 위성채널에 둥지를 틀었다.

러브호텔 등에서 상영되는 성인전문 위성채널이나 유료 케이블TV는 최소한의 에로영화를 필요로 한다. 이런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플레이보이 등에서 만든 외국 에로물과 일본 AV를 한국 상황에 맞게 재편집한 영상물이다. 묘한 것은 노출이나 성행위 장면이 약하다 하더라도 한국 에로영화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는 것이다. 신토불이가 음식뿐 아니라 욕망에도 통용된다고나 할까.

케이블과 위성TV용 에로영화를 공급하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간대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흥행이 잘됐을 경우 영화 한 편에 2000만~3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케이블과 위성TV는 그나마 에로영화가 명맥을 이을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에로업계 종사자들은 IPTV 등 새로운 매체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안방에 설치된 주문형 VOD 시장이 활성화되면 사라진 비디오 대여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유통비용 없이 직접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률이 오히려 좋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IPTV가 활성화되면 그 시장 규모가 과거 비디오 대여시장의 몇 배 이상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올해 모바일 포르노시장 규모는 이미 3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말하자면 에로영화계는 과거 싸구려 영화제작사 개념에서 정보통신을 결합한 IT산업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사람들은 에로가 망했다고들 말하지만 오히려 에로는 새롭고 다양한 매체 속으로 숨어들어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명구씨는 에로와 포르노도 문화이자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국내외 업계를 10여 년간 관심을 갖고 취재해 왔으며 『포르노사이트 기행기』 『음란한 예술-에로틱 아트』 등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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