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애니] 띠동갑, 연상녀…평범한 이들의 특별한 '연애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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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빛깔의 옷을 잘 입어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 필명이 됐다는 만화가 강풀씨. 기자와 만나는 날도 녹색 윗도리를 입고 나왔다. 신작 ‘순정만화’에는 나이도, 신분도 제각각인 여섯 남녀의 순정적인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임현동 기자]

"저도 '변태만화가'만 아니라 '순정만화가' 소리를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어요. 물론 순정만화하면 12등신 금발미녀나 완벽한 재벌 아들을 연상하는데, 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예요."

'순정만화'(전2권 가운데 1권 출간.문학세계사.1만2천원)라는 제목으로 첫 장편을 펴낸 만화가 강풀(30.강도영)씨의 말이다. 인터넷 만화가로 출발, 각종 배설물을 곧잘 등장시키는 엽기적 취향으로 유명한 그로서는 뜻밖의 제목이다. 사실 4등신쯤 되는 주인공들의 생김새는 명랑만화에 가깝다. 실제 읽다보면 픽픽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이어진다. 그런데 웃음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상연하가 뒤섞인 남녀들의 쉽지 않은 연애를 지켜보자면 어느새 잔잔한 감동이 전해져온다.

'순정만화'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연우와 띠동갑인 여고생 수영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연우가 조그만 일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순진남인 반면 수영은 이 회사원 아저씨의 어벙한 차림새를 맘껏 비웃는 되바라진 여학생이다. 우연한 계기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문을 튼 두 사람은 출근길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호감을 갖게 된다.

나이 차이가 무려 12살, 그것도 한쪽은 미성년자인 이들의 연애는 언뜻 오해를 낳을 법도 한데 작가는 두 사람 사이에 싹트는 감정을 그야말로 '순정'으로 그려내 설득력을 얻는다. 작가는 수영에게 용기를 주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 연상의 여인을 흠모하는 또 다른 남고생을 등장시키고, 이네들이 오가는 동네 골목길의 노점상 남녀 사이에도 분홍빛 감정을 맺어준다. '순정만화'는 남녀 두 사람에게 집중하는 여느 멜로와 달리 이처럼 남녀 세 쌍의 사랑얘기로 가지를 쳐나간다.

"연애가 두 사람만의 일은 아니죠. 양쪽 친구도, 가족도 다 관계를 맺게 돼요. 남녀관계는 흔히 삼각 관계가 재미있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이런 경우예요. 제 경험으로도 이쪽 둘이 연애질하는 게 저쪽 둘이 연애질하는 데 미묘한 영향을 준다고 봐요."

'연애질'이라는 표현에서처럼 강풀씨의 말투는 거침이 없다. 이런 그도 복학생 시절부터 6년간 사귀어온 여자친구 앞에서는 말을 가려쓰는 순한 양이 된다고 했다.

"버스 타면 여고생들 욕하는 게 장난 아니잖아요. 근데 막상 얘기를 해보면 절대 저질이 아니에요. 나름대로 순수하고 솔직해요. 인터넷에 연재하는 동안 팬이 된 여고생들을 만나서 실제 생활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연애가 사람을 변하게 하잖아요. 수영이처럼 당돌한 여학생의 순수한 내면이 드러나게 하는 계기죠. 그렇다고 남자에게 순종적인 여자로 그리지는 않을 거예요."

듣고 보니 요모조모 배려가 깊다. 형식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말풍선 안의 대사는 적고, 주인공들의 내레이션이 많아요. 연애가 실제 그렇잖아요.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과 느낌을 겪게 되죠. 그런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국문학과를 나온 강씨는 학내분규가 극심했던 대학시절 만화 대자보를 그리면서 자연스레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대학졸업 후 무려 4백여 통의 이력서를 서울의 만화관련 출판사에 보냈지만 연재하자며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만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 차례 책으로 묶여 나왔고, 요즘은 스포츠신문에도 연재하는 인기만화가가 됐다.

'순정만화'는 지난해 가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인 작품이다. 하루 최고 2백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최근 충무로 제작사와 영화화 계약도 했다.

만화 고유의 칸에 구애받지 않는 점은 다른 인터넷만화와 비슷하지만 극의 흐름이 이어지는 장편이라는 점은 인터넷만화에서 보기 드문 시도다. "온라인 만화의 한계죠. 단편이나 에피소드 형식이 잘 맞아요. 그리기도 편하고, 보기도 편하죠. 대신에 금방 잊혀지죠. 이 작품은 연재하기 전에 두 달 동안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놉시스를 쓰면서 준비했어요." 자신의 태생인 온라인 만화에 종이 만화의 재미를 결합하려는 그의 시도에 오프라인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낼지 궁금했다.

이후남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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