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회창·이인제 "신문·방송 겸영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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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에선 신문사가 방송사를, 방송사가 신문사를 소유하는 게 가능해질 것인가. 본지가 대선 후보 6명에게 신문.방송 겸영(兼營)에 대한 입장을 조사한 결과, 유력 대선 후보들이 겸영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측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시대에 신문과 방송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국내 방송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편익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둬 겸영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새 정부 출범 뒤 '21세기 미디어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설치해 통합적 미디어 정책을 수립하고 신문.방송 겸영의 구체적 방안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이회창 후보도 "방송의 범위가 넓어졌고 방송.통신 융합이 시대흐름인 상황에서 신문이 방송을, 방송이 신문을 제한적으로 겸영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겸영에 따른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도 세계적인 시장개방의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겸영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 후보 측은 "우리의 신문.방송 경영 환경이 공정 보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며 "겸영을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순천향대 장호순(신문방송학)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신문.방송 겸영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세계적으로 미디어 겸영에 대한 탈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최근 신문.방송 겸영 제약 조건을 계속 완화하고 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3일(현지시간) ▶특정 언론사가 한 지역의 신문사와 TV.라디오 방송국의 겸영을 못하게 한 조항 ▶언론사가 특정 지역에서 소유할 수 있는 방송국 수를 제한한 조항 등을 완화하는 방안 등을 전체 회의에 상정했다. 지역이 다를 경우에만 신문과 방송 겸영을 허용하던 것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FCC는 다음달 18일 이 안건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영국과 노르웨이도 각각 2003년, 2004년에 겸영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미디어 관련 규제가 심한 편인 프랑스의 경우 신문.TV.라디오. 케이블TV 중 두 매체까지 겸영을 허용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낮은 매체는 이 제한조차 받지 않는다.

한국외대 문재완(법학) 교수는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으나 신문사는 여전히 각종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며 "기술 발달로 각 미디어가 영역을 뛰어넘는 전면 경쟁에 들어선 만큼 관련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나리.김원배 기자

◆신문.방송 겸영 금지=1980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여론 통제를 위해 '언론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신문.뉴스통신.방송의 겸영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이를 근간으로 방송법에도 '일간신문.뉴스통신 겸영 법인은 지상파 방송사업과 종합편성 채널, 보도 전문 편성 채널을 겸영하거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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