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업부도-현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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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중돈은 풍부하고 경기가 전반적으로 호전되고 있는데도 왠지 부도율은 꺾이지 않은채 높다.돈의 흐름이 왜곡되어 있는데다 경기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구조조정까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갈수록 자금의「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현 상이 두드러지면서 이제는 부도율을 돈의 양만으론 잡기 힘든 시대가 됐다.
높은 부도율의 배경을 알아본다.
[편집자註] 경기는 과열(過熱)을 우려할 정도이고 시중 자금사정은 돈이 너무 풀려 걱정인데도 자금결제를 막지못해 쓰러지는기업은 도리어 늘고 기업부도율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8월의 경우 전국어음부도율은 그렇잖아도 높았던 당초 예상치(0.18%)까지 넘어선 0.20%에 달해 82년「李.張사건」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록 9월들어 부도율이 약간 떨어지고 부도업체 증가세는 주춤하지만 전체적으로 예년에 비해「높은」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91년까지만 해도 전국어음부도율은 평균 0.06~0.07% 수준이었고 경기가 바닥이었던 92,93년도 0.12~0.13%정도였다.
물론 창업추세를 감안하면 쓰러지는 업체가 많다는 자체만을 놓고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올들어 7월까지 전국에서 새로 생긴 회사는 8천9백46개로 같은기간중 쓰러진 업체(5천8백65개)를 훨씬 웃돌았다.전체적으로는 죽은 기업보다는 새로 태어난 기업이 더 많다는 얘기다.
법인만 따져보면 창업이 도산보다 무려 3배가까이 된다는게 한은 관계자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부도 추세는 시중의 자금사정이나 실물경제의 움직임과는 너무 동떨어져 그 원인과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왜일까.
통화당국은「가계수표의 남발」을 주범으로 돌리고 있으나 그렇게단순하지만은 않다.
금융실명제 이후 한도가 늘어나고 발행이 쉬워진 가계수표가 주원인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시중의 돈이 진짜 절박한 영세.한계기업등에까지 골고루 가지 못하는,「흐름의 차단」에 적지않은 책임이 있다.
경기호황 속에서도 신발.섬유등의 업종은 여전히 어려운 양극화현상에다 산업구조 조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은 버티기가더욱 힘들어진 점도 있다.
지난해 금융실명제 이후 정부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뭉칫돈을 풀었다.이 바람에 별로 담보가 없는 기업까지도 생명이 다소연장됐다.
그러나 올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은행들은 돈을 쌓아놓고도 담보나 신용이 없는 곳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신용이 단단한 곳에 대해서는 은행이 돈을 못빌려줘 안달이다.
『정작 돈을 빌려주고 싶은 곳은 안쓰겠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 한 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채산을 따져 위험하다 싶은 곳에는 절대 돈을안 빌려주니 영세.한계기업들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가계수표 3부로 할인 왔다갔다 하는 정부의 통화정책도 금융기관들의 보수적인 자금운용에 한몫하고 있다.
실명제 이후 사채시장이 위축되면서 특히 영세중소기업들은 더 돈구할데가 적어진 것,그리고 신용관리기금의 한도가 바닥나 진짜필요한 영세기업은 보증을 못받는 것도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바람에 오갈데 없어진 기업들은 가계수표쪽으로 몰리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일부에서는 가계수표가 사채 시장에서 월 3부로 할인되기도 한다.
결국 이런 요인들이 겹쳐 중소.영세기업들은「풍요 속의 빈곤」을 겪는 가운데 부도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金光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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