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에서>여자배구의 인간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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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한국여자배구가 중국을 꺾은 것은 정신력과 조직력의 힘이었다.
한국의 최대 강점은 잘 짜여진 조직력이다.이날 한국의 조직력은 돋보였다.그러나 조직력보다도 한국팀에는 남들이 알지못하는 엄청난 정신력이 있다.
지난달 그랑프리대회때 한국의 주장 이도희(李到禧)는 부친상을당했음에도 영결예배만 참석한후 장지(葬地)에도 못가고 경기에 임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이도희는 주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기필코 금메달을 따 영전에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철용(金哲鎔)감독은 또 어떤가.
아버지 묘소에도 못간 선수에 대한 죄책감에 경기가 끝나자마자金감독은 이도희와 함께 묘소에 가서 함께 울었다.
이들은 배구에 심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선수단 전체가 마찬가지다.이들은 감독 이하 전선수가 크리스천이다.이들은 경기가 끝난후 반드시 플로어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金감독은 연습때는 독사처럼 잔인하게 훈련을 시키지만 신앙의 테두리 속에서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키운다.
중국전에서 4세트가 끝난후 중국선수들이 벤치에서 쉬는 동안 한국팀은 바깥으로 나갔다.이들은 단순히 땀에 젖은 유니폼을 갈아입으러 나간게 아니라 탈의실에서 간절한 기도를 했을 것이다.
마지막 5세트에 나서는 선수들은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힘이솟구치는 것 같았다.피를 말리는 랠리포인트 경기와 긴 듀스를 치르면서도 한치의 양보없이 막강 중국팀을 21-19로 무너뜨린것은 오로지 정신력이었다.
이도희는 무릎연골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로 강남성모병원의 주치의가 『일반 생활도 힘들텐데 어떻게 운동을 하느냐』고 경악할 정도다. 사실 이날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보면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이도희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70%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하겠다는 의지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그러들지않았고 중국의 힘에 밀리지 않았다.
金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도 입을 쉬지않고 선수들을 지휘하고 격려했다.
감독인지 응원단인지 모를 정도였다.
감독과 선수들의 혼연일치,그것이 만리장성 중국을 무너뜨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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