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2000>1.종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그동안 매주 목요일 과학기술면에 연재해오던「일류의 현장」시리즈가 지난주로 끝나고 이번주부터「유레카 2000-풀어쓰는 산업기술사」시리즈가 새로 시작됩니다.이번 시리즈는 그동안 끊임없이발전해온 각종 산업기술들을 최초의 개발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류.상품별로 나눠 발전과정과 기술의 원리등을 알기쉽게 살펴봄으로써 이에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자 합니다.
유레카(Eureka)라는 말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도중 금의 순금도를 재는 방법을 발견하면서 외쳤 던『나는 알아냈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따라서 이 시리즈의 제목도 약2천년에 걸친 과학기술의 역사속에 탄생한 수많은 발명.발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편집자註] 정보화사회를 설명하면서 과거 종종 쓰였던 말이 「페이퍼리스」(paperless),「레터리스」(letterless)라는 단어다.
컴퓨터.복사기.팩시밀리등 각종 정보기기가 보편화되면서 그동안인류문명 발전의 양대축이었던 「종이」와「인쇄술」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활자인쇄술의 소멸은 분명하지만,종이만큼은 뛰어난 가독성.이동성.보존성등으로 인해 정보기기와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더욱이 4W(write,wrap,wipe,waste)로 불리는 종이의 기능이 첨단과학기 술과 결합돼새로운 사용처를 끊임없이 창출해내고 있어 『구텐베르크는 떠나도채윤은 영원하다』는 말이 등장하는 상태다.
고대 이집트인이 기록용으로 사용했다는 파피루스(Papyrus)가 페이퍼(Paper)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기는 했지만,이는식물줄기를 얇게 쪼갠뒤 눌러붙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 종이는 후한(後漢)의 채윤(蔡倫)에 의해 등장했다(서기 105년).
당시 중국인들은 삼베를 짤때 바닥에 떨어져 평평하게 쌓이는 풀솜찌꺼기를 그대로 말려 기록용으로 썼는데 채윤은 이에 착안,종이제조법을 완성했던 것이다.
당시 중동.서양에선 파피루스나 양가죽을 이용한 양피지(羊皮紙)등을 겨우 사용하는 수준이었으나,757년 고구려(高句麗)출신고선지(高仙芝)장군이 이끄는 唐나라군대가 탈라스에서 사라센군대에 패하면서 唐의 제지공들이 포로로 잡혀,제지술 이 최초로 서양에 전해졌다.
당시 중국에선 색종이.금박종이까지 등장했고 목판인쇄술의 개발이후에는 대형화된 제지공장들까지 생겨나 제지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국내에선 4세기께 제지술이 전래돼 닥나무를 주로 이용한 제지술이 발전했는데,종이의 섬유질이 고르고 희고 질겨서 중국으로부터 『신라의 한지(韓紙)는 천하제일』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유럽은 12세기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제지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나 가내수공업 형태에 불과했고,1789년 프랑스의 로베르가 초지기(抄紙機)를 개발하면서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이어 1840년 독일인 켈러가 오늘날처럼 나무를 부숴 나오는 펄프로종이 만드는 법을 개발했다.
그 결과 서양의 책들은 동양과는 달리 1백년만 지나면 쉽게 부스러지면서 보존하기 힘들어졌고,이것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중성지 개발의 배경이 됐다.
또 1874년 미국 올리브 롱은 약병이 깨지지 않도록 골이 지워진 종이를 넣는 특허를 출원,그동안 글씨쓰는 용도로만 인식되던 종이에 포장기능을 부여,기능지 개발의 장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1883년 김옥균이 낙동강 자생갈대를 원료로 한 제지공장을 용산에 처음 설치했으나 거의 운영되지 않았고 근대적인 제지산업은 일제가 신의주에 펄프.제지공장을 건설하면서 이뤄졌다.해방이후에는 일제가 남긴 몇몇 제지공장을 기 반으로 어려운 출발을 했으나 외국의 전후 복구자금배정과 국내의 자본참여등으로 62년도엔 연간 10만t을 넘어설수 있게 됐고 지난해에는총 5백80만t을 생산,세계 제1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생산 세계11위 오늘날 제지산업은 내수위주라는 산업자체의 한계,많은 기업들의 난립,국제원자재가 상승,환경보호추세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기술개발.신규시장개척.해외조림사업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작업이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전망은 밝 은 상태다.
특히 탄소섬유지.무진지.감압지.감열지등과 같은 기능지개발은 물론 폐지재활용을 위해 미생물.산소등을 이용한 표백기술등이 확보됐고 향후 제지기술의 핵심이 될 열효율 높고 수질오염이 적은생산시스템개발,다품종 소량생산 추세에 맞추기 위 한 소형 플렉시블 기계개발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李孝浚기자〉 ***다음회는 플라스틱편이 게재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